나의 부처님 공부

방거사의 깨달음

해탈의향기 2012. 6. 30. 16:45

 

 

방거사의 딸, 영조의 기민

 

 

  불교사상 출가(出家) 수도인 못지않게 독실히 수행하여 대도를 성취

한 재가 거사(在家居士) 선자(禪者)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그중에

서도 인도에 유마 거사(維摩居士), 우리나라에 부설 거사(浮雪居士),

중국에 방거사(龐居士)는 가장 탁월한 인물로서 후세까지 추앙을 받

고 있다.

  방거사는 도화(倒化)한 것으로 유명한 등은봉 화상(鄧隱峰和尙)과

같은 시대 사람이며 원래는 대부호였으나 청원문화(靑原門下)의 석두

화상(石頭和尙)과 남악문하(南嶽門下)의 마조대사(馬祖大師) 양대

가(兩大家)의 선하(禪下)에서 선지(禪旨)를 깨닫고는 가산(家産) 전

부를 남김없이 배에 실어다 동정호(洞庭湖) 물 속에 던져 버리고는 일

개 돗자리 장사가 되어 그날그날의 생계를 구차하게 이어 나갔다.

  그러나 일상 약산(藥山)과 단하(丹霞)등의 여러 선걸(禪傑)들과

친교를 맺어 훗날 공안(公案)이 될 수 있는 많은 문답을 남겼으며 안빈

낙도(安貧樂道) 한 그의 일가족이 남긴 재미있고 향기 높은 도담(道

談)과 기발(奇拔)한 행적(行跡)은 재가 수도인은 물론 모든 선자에게

깊은 깨우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방거사가 만년에 이르러 호북  양주라는 땅에서 암굴(岩窟) 을 집으로

삼고 공부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늘 따라다니며 시봉을 하는 그의 딸

영조(靈照)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를 하였다.

  "저 창 밖에 서서 해를 잘 지켜보다 해가 꼭 정오가 되거든 애비한테

알려다오."

  말을 마치고는 암굴 속으로 들어가 단정히 앉아서 돌부처같이 묵묵

히 좌선삼매(坐禪三昧)에 드는 것이었다.

  태양은 한 뼘 중천에 높이 떠올라 드디어 정오가 되었다.  영조는 굴

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정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일식(日蝕)을 하는군요."

  좌선삼매에 들어 있던 거사는 이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나오며 하늘

을 살펴보았다.

  이때 영조는 재빨리 굴 속으로 들어가 자기 아버지가 방금까지 앉아

서 참선하던 자리에 얼른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합

장을 하며 두 눈을 고요히 내리감고 묵정(默定)에 들었다.

  "이 놈 보아라."

  거사가 굴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영조는 벌써 묵

정에 든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영조는 일찍부터 묘한 선기(禪機)를 체득(體得)하여 때때로 그 아

버지를 골탕 주는 문답을 하는 천재 아이였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먼저

열반(涅槃)에 들려 하였으나 그만 딸에게 기선을 빼앗긴 셈이다.  거사

는 또 한 방망이를 영조한테 얻어맞은 것이다.

  "할 수 없군.  나보다 솜씨가 빠르니 나는 7일만 늦출 수밖에!"

  거사는 열반에 드는 것을 7일을 더 연기하고 딸의 시신(屍身)을 거

두어 다비(茶毘: 火葬) 를 하여 주었다고 한다.

 

 

 

방거사 일가의 깨달음

 

 

  방거사가 그의 딸 영조의 다비를 마치고 일주일이 되던 날. 그 고을의

태수 (太守) 우적이 암굴 (岩窟) 을 찾아왔다.  테수는 득도(得道) 한

거사(居士)이며, 방거사와는 절친한 사이로 뜻이 맞는 도우(道友)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쌓였던 정회를 풀고 여러 가지 현담(玄談)을 논

하며 정아한 즐거움을 서로 나누었다.  현묘한 도담(道談)이 한참 무르

익어갈 때 방거사가 태수의 무릎을 슬그머니 베고 누워서는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응시하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며,

  "공화(空華)¹ 의 그림자는 떨어지고 양염(陽焰: 아지랑이)의 파도

는 물결치도다."

라고 자기가 자신을 인도하듯 또한 상대방에게 유별(留別)을 고하는

듯한 일구(一句)를 토하고 정관(靜觀)의 정좌(正坐)를 취하더니 그

대로 영구히 침묵(沈默) . 입적(入寂)하여 버렸다.

  태수는 여법(如法)히 장례를 치르고, 그 유골(遺骨)을 별거하는 방

거사의 부인에게로 보냈다.  그 부인 역시 남편과 딸 못지않게 선자의

풍격(風格)을 갖춘 인물로서 마을 사람들이 방노파라고 부르며 공경하

고 따랐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과 애지중지하는 딸의 유골을 받고도 조

금도 놀라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신 나간 할아범! 어리석은 계집애! 한마디 없이 가버렸구나. 할

수 없지, 용서할 수밖에!"
  유골을 전한 태수의 사자(使者)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두말도 않고

되돌아서 이번에는 방거사의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또 부음(訃音)

을 전하였다.

  이때 그 아들은 마침 황무지를 개간하느라 흙투성이가 되어 일을 하

고 있었다. 그도 역시 사자로부터 망극하고 애통한 소식을 듣고도 얼굴

빛 하난 변치 않고 말했다.

  "아,그렇습니까? 먼저 가셨군."

  담담하게 남의 일처럼 말하더니 그 자리에서 쾡이를 짚고 서서 그대

로 입망(立亡) 하여 버렸다.  얼마를 있어도 마치 고목나무처럼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아 사자가 이상하게 여겨 건드려 보니 이미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놀라고 당황한 그는 쏜살같이 방노파에게 되짚어 달려가서 이 사실

을 전하였다.  노파는 조용히 듣고만 있더니

  "못난 자식 같으니, 못나도 분수가 있어야지..."

  비통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못났다고 나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곧 아들이 입적한 곳으로 가 그 시신을 거두어 화장을 한 후

유골을 처리하고는 홀로 고향으로 돌아가 두루 연변지기(緣邊知己)를

찾아다니며 고별(告別)을 하였다.  그 후 방노파의 소식은 돈절(頓切)

하여 그녀의 생사 거취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1) 공화(空華)란 허공 중에는 본래 꽃이 없는 것이지만 눈병이 있는 사람들이 혹

   시  이를 보는 수가 있다.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이라고 잘못아는

   것을 비유함.

 

 

 

 

 

 

                    ㅡ숭산스님의《 세계일화 》 중에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