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성의 전생과 금생
김현준
(불교신행연구원 원장)
통일신라시대 서라벌［慶州］의 모량리에 살았던 가
난한 여인 경조(慶祖)는 외동아들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의 머리가 크고 이마가 유난히 넓어 성
(城)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대성(大城)'이라고 하였
다. 어머니 경조와 대성은 부자인 복안(福安)의 집에
서 부지런히 일을 하여 약간의 밭을 얻었고, 그 밭을
일구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어느 날 흥륜사의 점개(漸開)스님이 참회법회인 육
륜회(六輪會)를 개최하기 위해 이집 저집으로 화주를
다니다가 복안의 집에 이르렀고, 주인 복안이 베 50필
을 선뜻 시주하자 점개스님은 축원을 해 주었다.
"보시를 좋아하니 하늘의 신이 늘 지켜 주실 것입니
다. 한 가지 물건을 보시하시면 만 배를 얻어 안락하
고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대성은 어머니께로 달려가
말씀드렸다.
"흥륜사 스님 말씀이 '하나를 시주하면 만을 얻는
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전생부터 선업을 짓지 못해
금생에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것인데, 금생에도 시주
를 못하였으니 내생의 곤궁이 환히 보이는듯 하옵니
다. 저희 집안 전 재산인 밭 세 이랑을 흥륜사 불사에
시주하여 내생의 좋은 응보(應報)를 받도록 하심이 어
떻겠습니까?"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쾌히 승낙을 하고 그 밭을 점
개스님께 보시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
기 대성이 죽었는데, 그가 죽던 날 국상(國相) 김문량
(金文亮)의 꿈에 한 동자가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는 것
이었다.
"저는 모량리에 사는 대성이라는 아이입니다. 이제
국상 내외를 부모로 삼아 태어나고자 하오니,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주십시오."
국상이 꿈이 하도 생생하고 신기하여 곧 사람을 보
내어 사실을 알아보게 하였다. 과연 모량리 경조의 집
에서는 대성의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상은 후히
돈과 쌀을 보내 장례를 치르게 하고, 또 그 어머니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논과 밭도 주었다.
그 뒤 국상의 부인은 차츰 배가 불러왔고, 마침내 아
이를 낳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기가 왼쪽 손을 꼭
쥔 채 펴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7일이 지나 국상이 경
조여인을 데리고 와서 아기를 보이자, 아기가 그토록
쥐고 있던 주먹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 손 안에는 '大
成' 이라고 쓴 금간자(金簡子)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탄성을 발하였다.
"어찌 사람이 윤회전생(輪廻轉生) 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국상은 아기의 이름을 그대로 '대성' 이라
고 하였다.
대성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을 받았고, 전생의 어머니와 현생의 보모 집을 왕래하
면서 조금도 소홀히 함이 없어 효자로 명망이 높았으
며, 자라서는 관직에 올라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
러나 무술을 좋아한 그는 나라 일을 보지 않는 날만 되
면 깊은 산중에 들어가 사냥을 하였다. 하루는 토함산
에 올라가 큰 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날 밤 꿈에 그
곰이 나타나 무섭게 대들며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잡아 죽였느냐? 전생에도 나
를 괴롭히더니, 이생에서 또다시 나를 죽여? 이제부
터는 내가 너를 괴롭히리라."
대성이 벌벌 떨면서 물었다.
"너는 누구인데 나를 전생부터의 원수라 이르느냐?"
"나는 모량리 부자 복안의 딸 곰녀였다. 그때 너를
사모하였으나 네가 듣지 않았으므로, 나는 오동나무
에 목을 매어 죽었노라. 그리하여 곰으로 태어났다가
너를 다시 만나 반가이 따랐는데, 네가 나를 활로 쏘
아 죽였으니 어찌 원수가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나의 잘못이 참으로 컸구나. 내가 모르고
한 것이니 용서해 다오. 이제부터라도 다시는 원수의
인연을 맺지 말자. 그리하면 내 너를 위해 마땅히 좋
은 일을 하리라."
"그렇다면 나를 위해 절을 하나 지어 다오. 불법을
신앙하여 마음을 개심하고 해탈을 얻겠노라."
이 말을 듣고 깨어난 대성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
어 있었다. 대성은 깨어나자마자 전생의 어머니를 찾
아가 이 사실을 물었다.
"어머니, 모량리 복안의 집에 죽은 딸이 있습니까?"
대성은 질문과 함께 어머니께 꿈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단다, 네 나이 열여덟이 되던 해에 그 집의 무
남독녀 곰녀가 너를 사모하였으나, 네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비관하여 오동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일이 있다. 그 뒤 네가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죽
었으므로, 나는 필시 그녀의 원귀가 작동하여 잡아간
것으로만 알았었다. 뜻밖에 네가 재상의 집에 태어났
기에 나는 크게 맘을 놓을 수 있었단다. 그런데 이제
네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구나. 네가 만일 그
녀에게 절을 지어 줄 약속을 하였다면 결정코 약속을
이행하여 다시는 나쁜 인연을 맺지 않도록 하여라."
대성은 그 뒤부터 사냥을 하지 않고 오직 불법에 뜻
을 두어 크게 자비심을 일으켰으며, 그 곰을 위해 장
수사(長壽寺)라는 절을 지어 주었다.
이렇게 윤회와 인과응보의 철칙을 체험한 대성은 전
생의 부모와 현생의 부모을 위해 보은의 불사를 시작
하였으며, 마침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축조하였다.
현대인들 중에는 윤회하여 다시 태어난다는 당연한
가르침을 확고히 믿는 이들이 드뭅니다. 이 한 목숨 다
하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전생도 눈에 보
이지 않고 내생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우주에서는 가끔씩 윤회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 사람들의 삶을 각성시킵니다. 『삼국유사 三國遺
事』에 가록되어 있는 김대성의 전생과 현생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김대성의 이야기는 '윤회한
다' 는 사실 이외도 여러 가지 가르침을 줍니다. 이야
기가 전개된 순서에 따라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첫째, 선한 마음을 일으켜 보시를 하면 ①하늘이 지
켜 주고, ②보시한 것의 만 배나 되는 이익을 얻으며,
③안락과 장수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전생의 대성과 어머니 경조는 흥륜사에 기꺼이 전
재산을 보시하였습니다. 그 공덕으로 대성은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상(國相)의 아들로 태어나 부
귀(富貴)를 누리며 살았고, 어머니 또한 국상으로부터
많은 돈과 논밭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선한 마음으로
기꺼이 보시할 때 그 복덕이 커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 번 실천해 보십시오. 부처님이 계신 사찰이나 가
난한 이웃, 그리고 명분 있는 일에 보시를 해보십시오.
생각보다 너무나 빨리 좋은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상(相)을 내지 않고 기꺼이, 진
심으로 보시한다면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으로 변하겠
지만, 비록 상(相)을 낼지라도 보시에 따른 일정한 과
보는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단, 한가지는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邪道)의 보시
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불안한 현실
을 이용하여 돈을 보시하도록 유도하는 경우, 욕심을
부추겨 보시하도록 하는 경우에는 응하지 말아야 합
니다. 이러한 보시는 결과가 삿되기 때문이요, 인간을
타락의 길로 접어들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보시는 지혜의 보시입니다. 이기심을 비움으
로써 대우주의 가득 차 있는 크나큰 행복을 수용하게
끔하는 보시입니다. 그래서 '무주상(無住相)으로 보
시를 하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청정보시를 하여야 합
니다. 주는사람 . 받는사람 . 보시한 돈이 쓰일곳 , 이
셋이 모두 청정하여야 합니다. 청정하고 지혜로운 무
주상보시라면 대성과 어머니 경조의 경우처럼 큰 행
복이 저절로 도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전생에 지은 업이나 원결이 다음 생에까지 그
대로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속의 곰녀는 대성
을 짝사랑하다가 오동나무에 목을 메어 죽었고, 대성
은 한 맺힌 곰녀의 원귀(寃鬼)로 인해 갑자기 죽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 곰녀가 곰으로 다시 태어나자, 대성
은 전생의 원한이 깃든 업으로 인해 반가이 따르는 곰
을 활로 쏘아 죽였습니다. 마침내 곰의 꿈을 꾸고 모
든 것을 깨달은 대성은 참회를 합니다.
"나의 잘못이 참으로 컸구나. 내가 모르고 한 것이
니 용서해 다오. 이제부터라도 다시 원수의 인연을 맺
지 말자. 그리하면 내 너를 위해 마땅히 좋은 일을 하
리라."
이렇게 참회를 함으로써 대성과 곰녀는 세세생생 서
로를 괴롭힐 업의 매듭을 풀었습니다. 곧 서로의 마음
밑바닥에 흐르고 있던 원한의 매듭을 푼 것입니다.
참회와 반성! 이것이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
놓습니다. 이기적인 삶을 사는 우리는 참회와 반성을
모릅니다. 잘한 것은 내 탓, 잘못되는 것은 남의 탓으
로 돌립니다. '나' 는 옳고, '나' 이기 때문에 참회도 반
성도 할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더욱 얽히고
설키게 되며, 마음의 벽을 서로서로 더욱 두텁게 만들
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스스로를 원망합니다. 우울증에 빠져들
고 사람을 기피합니다. 세상도 싫고 미워집니다. 그리
고 당연히 사랑해야할 가족들까지 심하게 괴롭힙니다.
과연 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반성입
니다. 참회입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나의 문제점
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김대성과 곰녀의 경우처럼 참회를 하면 모든 것이
녹아내립니다. 맺혔던 원한이 완전히 풀립니다. 이처
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참회 이상 가는 것이 없습니
다. '잘못했습니다.' 이것 이상 맺힌 것을 빨리 풀어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업이든 보이지 않는 업이든, 잘 풀
리지 않는 일이 있고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 놓여 있으
면 참회를 하십시오. 그리고 상대의 행복을 축원(祝
願)해 주십시오.
참회와 축원이야말로 맺힌 것을 풀고, 푼 것을 더욱
원만히 만들어 주는 최상의 비결이라는 것을 꼭 명심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불사(佛事)를 행하는 것이 업을 풀고 은혜를 갚
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김대성은 곰녀의
해탈을 위해 장수사를 지어 주었고, 전생의 부모를 위
해서는 석굴암을, 금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지었습니다.
물론 재력이 뛰어나 이와 같은 큰 불사를 하면 좋겠
지만, 그렇지 않다면 형편 따라 조그마한 불사를 행하
면 됩니다. 한 권의 좋은 불서를 이웃에게 법보시하는
것도 불사요, 가난한 이에게 양식을 보태 주는 것도 부
처님께서 권장한 불사의 한 유형입니다. 그리고 그 공
덕을 맺힌 업을 풀거나 은혜를 갚는 데로 회향(廻向)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윤회와 인과응보를 알면 발심(發心)을 잘 할 수
가 있습니다. 사냥을 즐겼던 대성은 자신과 웅녀의 윤
회와 인과응보를 체험한 다음부터 사냥을 하지 않고
오직 불법에 뜻을 두어 크게 자비심을 일으켰으며, 오
늘날에까지 많은 이들에게 깨달음의 씨를 심어 주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창건하지 않았습니까?
꼭 기억하십시오. 불자의 길은 윤회와 인과응보를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정녕 우리가 윤회와 인
과응보를 확실히 믿는다면 능히 많은 선업(善業)을 짓
고 좋은 불사를 많이 행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인생
을 마구잡이로 살지 않게 됩니다.
마구잡이로 살지 않는 것! 그것은 곧 진실하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윤회와 인과응보를 알기 때문에 그
릇된 길로 나아가지 않고 차츰 성실하게, 정성껏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에 따른 복이 한량없이 쌓이고 깨달음의
길이 차츰차츰 열리게 되나니... 이것이 참된 불자의
삶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