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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장끼처럼 온 세상을 날아다닐 아이/ 반기문

해탈의향기 2013. 3. 25. 05:51

 

 

 

 

   9촌 숙모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호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못 보던 나무였다.  호두가 주렁주렁

열린 게 정말 탐스러웠다.  딱 한 개만 따고 싶어.  '저걸 어떻

게 딸까' 궁리하며 나무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나무

꼭대기에서 수꿩인 장끼가 우아한 자태로 내려왔다.  원래 꿩

은 수컷이 암컷보다 털도 윤기 있고 몸집도 크다.

    "그래! 호두 대신 이 놈을 잡아야겠다."  하지만 꿩은

생각보다 날랬다.  아무리 쫓아가도 잡히지 않았다.  꾀를 내

어 수풀 사이에 숨어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아무것도 모르

고 어슬렁거리던 꿩은 끝내 잡혔다.  꿩 발목에다 끈을 매달

아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 녀석은 좀 푸드덕거리는 게 아니

었다.  방 문고리에 줄을 매놓으니 방 안 온 구석구석을 날갯

짓을 하면서 날아다녔다.

 

 

    반기문이 어머니 신현순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

났다.  '참 이상한 꿈이네.  무슨 꿈일까? 혹시 이게 태몽이라

는 걸까? 태몽이야 어찌됐든 이번에는 제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야 할 텐데 ···.'  이미 두 아이가 있었지만 태어난 지

백일 만에 모두 숨진 터라 집안 모두 자손 문제로 근심이 많

았다.  이번에는 보약까지 챙겨 먹으면서 조심조심 지내고 있

지만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시어른들은 여전히

아들이 태어나주길 기대히고 있었지만 신 씨는 아들이고 딸

이고 제발 순산해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원이 없겠다며 하

늘에 빌었다.

    신 씨는 증평(충북 괴산)에 계신 친정 부모님과 남동생

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하지만 먼젓번에 친정에서 해산 후

아이를 여윈지라 찾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는 남편의 고향인 음성(충북)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

마침 남편이 음성으로 발령이 난 참이었다.  고향마을에 가면

조상님들이 자손을 지켜주실 거라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남편 반명환의 고향마을은 광주 반 씨 문중에서도 장

절공 행치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집

성촌이다.  그래서 행치마을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여느 시

골 마을처럼 외지고 척박했지만 세 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

진 조덕산이 힘차고 온화한 기운으로 행치마을을 감싸고 있

었다.  훗날 풍수전문가들은 이곳의 지기(地氣)가 온유한 성

격의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하는 형상이라고 했다.  그 기운을

타고 태어난 것일까.  1944년 6월 13일 신 씨가 그렇게 마음

을 졸이며 열 달을 배고 있던 아이, 기문이 태어났다.

 

 ㅡ신웅진《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중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