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장끼처럼 온 세상을 날아다닐 아이/ 반기문
9촌 숙모를 뵙고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호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못 보던 나무였다. 호두가 주렁주렁
열린 게 정말 탐스러웠다. 딱 한 개만 따고 싶어. '저걸 어떻
게 딸까' 궁리하며 나무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나무
꼭대기에서 수꿩인 장끼가 우아한 자태로 내려왔다. 원래 꿩
은 수컷이 암컷보다 털도 윤기 있고 몸집도 크다.
"그래! 호두 대신 이 놈을 잡아야겠다." 하지만 꿩은
생각보다 날랬다. 아무리 쫓아가도 잡히지 않았다. 꾀를 내
어 수풀 사이에 숨어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아무것도 모르
고 어슬렁거리던 꿩은 끝내 잡혔다. 꿩 발목에다 끈을 매달
아 집으로 데리고 오는데, 녀석은 좀 푸드덕거리는 게 아니
었다. 방 문고리에 줄을 매놓으니 방 안 온 구석구석을 날갯
짓을 하면서 날아다녔다.
반기문이 어머니 신현순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
났다. '참 이상한 꿈이네. 무슨 꿈일까? 혹시 이게 태몽이라
는 걸까? 태몽이야 어찌됐든 이번에는 제발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야 할 텐데 ···.' 이미 두 아이가 있었지만 태어난 지
백일 만에 모두 숨진 터라 집안 모두 자손 문제로 근심이 많
았다. 이번에는 보약까지 챙겨 먹으면서 조심조심 지내고 있
지만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시어른들은 여전히
아들이 태어나주길 기대히고 있었지만 신 씨는 아들이고 딸
이고 제발 순산해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원이 없겠다며 하
늘에 빌었다.
신 씨는 증평(충북 괴산)에 계신 친정 부모님과 남동생
들이 문득 그리워졌다. 하지만 먼젓번에 친정에서 해산 후
아이를 여윈지라 찾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는 남편의 고향인 음성(충북)에서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
마침 남편이 음성으로 발령이 난 참이었다. 고향마을에 가면
조상님들이 자손을 지켜주실 거라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남편 반명환의 고향마을은 광주 반 씨 문중에서도 장
절공 행치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집
성촌이다. 그래서 행치마을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여느 시
골 마을처럼 외지고 척박했지만 세 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
진 조덕산이 힘차고 온화한 기운으로 행치마을을 감싸고 있
었다. 훗날 풍수전문가들은 이곳의 지기(地氣)가 온유한 성
격의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하는 형상이라고 했다. 그 기운을
타고 태어난 것일까. 1944년 6월 13일 신 씨가 그렇게 마음
을 졸이며 열 달을 배고 있던 아이, 기문이 태어났다.
ㅡ신웅진《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중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