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한 걸음 설계도를 따라서/ 반기문
미국에 다녀온 후 기문은 한동안 마법의 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멍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미국 여행에 대한 추억은 옆으로 접어놓고 얼른 다른 책을 손에 잡아야 했다. 입시 준비에 모든 걸 걸어야 하는 고 3의 신분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에 다녀오는 1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동안 입시와 멀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시간을 더 소모할 수가 없었다. 그런 기문에게 한 친구가 농담 반 걱정 반으로 말을 건넸다.
"야, 한 달을 놀고 왔는데 서울대학 갈 수 있겠냐? 힘들지 않겠어?'
"글쎄, 해보는 데까진 해봐야지 뭐. 해보다 안 되면 할 수 없는 것이고."
"어이구, 태평하긴."
말을 건넨 친구는 기문이 태평하게 나오니 차라리 민망한 표정이 되었다. 기문의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문제를 놓고 이래라 저래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아들의 속내를 잘 알지 못하던 아버지는 장래가 걱정됐는지 아들을 불렀다.
"기문아, 너는 공부를 잘하니 의대에 가는 게 어떻겠냐? 너도 알다시피 할아버지가 한약방 하셨잖냐. 요즘 들어 할아버지 말 듣고 나도 한약이나 배웠으면 좋았을껄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식구들 고생시키다 보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그러니 너는 안정적인 의사가 되면 좋겠다."
기문은 아버지의 말씀을 잠자코 들었다, 그러곤 어렵게 입을 뗐다.
"그런데 아버지, 의사도 좋은 직업이긴 한데요. 저는 그쪽은 좀 아니지 싶어요. 왜냐면 피만 봐도 무섬증이 생기거든요. 그러니 어찌 의사를 할 수 있겠어요. 저는 의사보다는 외국어 하는 게 좋거든요. 외교학과 가서 외교관 할래요."
영어를 잘하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외교관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혹시 이 애가 미국을 다녀와서 헛바람이 들었나 싶어 아버지는 놀라 물으셨다.
"너 이번에 미국 다녀와서 미국물 들어서 그러는 거냐?"
"아니에요. 그전부터 생각이 있었어요. 영어 선생님도 그리 지도해주셨고요. 제가 외교관 쪽으로 나가면 잘할 것 같다고 하시면서요."
"그래? 선생님이 잘 봐주셔서 고맙구나. 선생님이 더 잘 아시겠지. 그런데 그거 쉬운 건 아닐 텐데. 하여간 네 뜻은
알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뜻대로 해보라는 표시였다. 평소 성품이 유순한 아들이었지만, 한번 마음먹은 일은 쉽게 바꾸지 않는 성격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 "외교관이 될 거구먼유" 라고 말해놓고도 사실 기문은 막막했다. 어쩌면 어른들 바람대로 의사가 되거나 은행 같은 큰 직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 안정적인 계획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이제는 확실하게 알았다.
반기문이 충주고 문과에서 최고 성적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서울대가 보장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외교학과는 당시에도 인기학과라 경쟁이 만만하지 않았다. 이러저런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런 잡생각에서 얼른 빠져나와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걱정이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그때 동생이 와서 한마디 툭 던졌다.
"서울대 외교학과? 그래, 어차피 떨어질 거면 센 학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야 핑계라도 대지. 잘해봐."
"이 녀석이 형을 놀려. 미국 가서 케네디 대통령도 만나고 온 형을 뭘로 보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합격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았다.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고 있어 약간의 혼란도 있었다. 기문은 그저 하던 대로, 할 수 있는 대로 성실히 시험을 준비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걱정을 하긴 했지만 기문은 1963년 무난하게 서울대 외교학과에 합격했다. 합격증을 받고 나니 '미국에서의 한 달이 아니었으면 수석 입학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건데' 라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인 허문영도 서울대 공대에 합격해 충주고엔 큰 경사가 났다. 한 해에 두 명이나 서울대에 들어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골 학교를 다녔던 반기문이 김성태 선생님과 같은 열의 있는 영어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또 열아홉에 미국에 가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거기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꿈은 씨앗인 상태로 발아되지 못한 채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반기문은 자신의 꿈에 물을 줄 사람을 만나 꿈의 줄기와 이파리를 생생히 키워갈
수 있었다. 꿈도 물을 줘야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ㅡ 신웅진《 바보처럼공부하고 천재처럼꿈꿔라 》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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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악어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