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용 서
해탈의향기
2012. 7. 9. 06:52
"당신 겁니다. 자, 곧 다시 만납시다."
그날 일정을 마치고 여인숙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내 방문이 열려 있었고, 여인숙 아래 옥상에서 빨래
를 널고 있는 티베트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멀어서 잘 들리진 않
았지만 그녀 역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침에 촬영한 장면을 보기 위해 비디오 카메라를 꺼냈다. 스위
치를 켜고 테이프를 처음으로 되감았다. 작은 LCD 화면에 뜬 첫
번째 영상은 명상하는 방의 탁자 뒤켠에 앉아 있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었다. 그는 명상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명도 적
당하고 소리도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에 가로줄들이 나타났
다. 벽화 대신, 회색 바탕에 반투명의 가로줄들만 보였다. 달라이
라마는 화면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 가로줄들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춤을 추었다. 테이프를 정지시켰다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역시 가로줄들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테이프를 처음으로 되감은
뒤 첫 장면을 다시 틀었다. 조명이 약해 색이 어두웠지만, 막 가부
좌를 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선명했다. 그 다음의 명상
하는 장면들은 어찌된 일인지 다 지워져 있었다. 배터리가 다 닳
을 때까지 반복해서 테이프를 되감고 재생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