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불
한 미녀가 옷을 잘차려입고 어떤 집을 찾아갔다.
그 집주인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공덕천(功德天)이란 여인입니다. 내가 가는곳 마다 머무르
는 집마다 행운이 찾아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반갑게 맞아 안방으로 안내하여 다과를 베풀
었습니다. 조금후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못생긴 얼굴에 다헤어진
옷을 입고 한 여인이 서있었다. 주인은 물었습니다.
"누구냐?"
"나는 흑암천(黑暗天)이란 여인입니다. 내가 가는곳 마다 그집에
는 불행이 깃든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화를 벌컥내면서 빨리 가라고 호통을 쳤습니
다.
"조금전에 방문한 공덕천은 나의 언니입니다. 우리는 자매이기
때문에 헤어지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니 주인은 집안으로 달려들어가서 공덕천(행운의 여신)
에게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사랑하려면 내 동생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니 주인은 자매 (姉妹)를 내쫓아 버렸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해 지길 원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못합니
다. 정말 모순이 아닐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Happy)과
향락(Enjoy)를 혼동하는 수가 있습니다. 마음껏 술을 마시고,취하
고, 마음대로 돈을 쓰고, 좋은 음식과 화려한 옷을 입고, 미녀를 가
까이 하고, 높은 지위에 있게 되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
나, 행복은 순간적인 향락이 아닙니다. 순가적인 향락은 반드시 쓰
디쓴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즐거움이란, 변함없는 영원
한 것이어야 합니다. 즐거움의 한순간이 지나고 뒤이어 괴로움이 따
라온다면 그것은 참된 즐거움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의 주소를 알지 못하
고 거짓 행복을 참된 행복이라고 착각하는데서 출발합니다. 호롱불
이나 촛불이 밤벌레의 죽음을 초래하듯이 사람들은 향락의 불꽃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의 삶은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러나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과 바램을 무참히 꺽어버리는 죽음의
살귀가 사람들의 주변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
아닐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이 죽음이 나의 삶을 밀치고 들어
올 것인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얼마나 숨막히는 삶의 연속입니
까? 이러한 절박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개개인의 인생관
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설정되어야 될것입니다.
「영국 격언에」
하루를 즐기려면 골프를 쳐라.
일주일을 즐기려면 결혼 하라.
한달을 즐기려면 승마를 하고,
1년을 즐기려면 집을 지으라.
10년을 즐기려면 나무를 심고,
평생을 즐기려면 진실을 심으라.
진실(眞實)이란 아무나 심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각자의 위
대한 행적과 양서를 통해 의(義)를 배우고 종교를 통해 실천이 겸
행될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과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겠
읍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철인들, 문인들이 인생을 철학적 문학적
주제로 삼아왔다. 2+2=4라는 수학적 진리처럼 명확한 인생의 해
답은 한두마디로 내릴수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어떤 수학적인 결론
을 얻을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의 의미가 깊어지고 더욱 값진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인생이란 남의 애기가 아닌 나의 삶과 연
결된 문제요. 나라는 존재가치를 결정짓는 문제입니다.
옛날 사람들의 인생의 개념은 흔히 노래 가락 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 가시밭 길, 일장춘몽, 또한 초로와 같다는 무상하고 허무한 인
생을 '한 '으로 표현하고 있읍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한 노래를 부르
면서 허무한 삶에 도전해 보려고 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가시밭길 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행로가 고달
픈 것이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길을 떠나는 나그네길, 허무한 삶을
부정하고 실의에 찬 내용일 것입니다. 한편, 일장춘몽이니 초로니
하는 것은 고달픈 인생이지만 하룻밤 꿈처럼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수명이 짧음을 잘 표현하고 있읍니다. 이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한다
면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보
다 높은 이상과 삶을 지니고 있읍니다. 고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표
현합니다. 그 이유는 짐승에 비해서 세가지가 다른점이 있기 때문입
니다.
첫째, To be with ㅡ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다.
동물은 집단을 이루고 살아도 자신의 영역과 먹이는 엄격히 구분
하고 조금이라도 침범을 당하면 가차없이 싸우게 된다.
둘째, To be forㅡ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동물은 다른 동물에게 먹이를 양보하거나 도움을 주는 일이 없다.
같은 종족이라도 먹이를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때로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셋째, To be moreㅡ 항상 발전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동물은 먹고, 자고, 성욕만 갖고 있지만 사람은 생각하고, 이상을
갖고 발전하는 것이다.
미국의 제 22대 대통령으로 '클리블랜드'가 당선됐다는 뉴스가
어떤 감옥에 전해지자 한 죄수가 예사롭지 않은 놀라움을 보였다.
곁의 사내가 무슨 까닦이 있을까 싶어 물어보았더니 그는 자신의 과
거를 밝혔다.
한창 나이때 '클리블랜드'가 어느 변호사의 서기생활을 했을때 어
느날 그는 나쁜 친구에게 이끌려서 술을 마시러 가게 되었읍니다.
그는 걸어가던 도중에 문득 성경의 죄의 값은 죽음이다 라는 귀절이
떠올랐다. 클리블랜드가 '이래서 안돼, 자칫 유혹에 빠질뻔 했다'고
생각하고 '미안하지만 나는 갈 수가 없구나, 해야 할 일이 생각났
어'라고 말하며 되돌아 가려고 했다.
그러자 클리블랜드의 친구가 '그럴수야 없지. 함께 가자. 할일이
라면 나중에 해도 상관없잖아?' 라고 말하면서 그를 막무가내로 끌
었다.
"자, 한번 즐겁게 마시고, 그리고 나서 열심히 일하기로 하자구
나"라고 꽤나 집요하게 유혹했다.
클리블랜드로 친구들 말에 동의할 듯 했지만, 이는 중대한 갈림길
이라고 여기고 마침내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 그는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 간수장이 되고 버팔로 시장이
되고, 뉴욕 주지사가 되고,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다. 그 옛날 나쁜
친구가 그 죄수였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제멋에 사는 것이 멋이다 라고 말합니다. 제
멋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에 여러가지 종류의 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
다.
이 많은 시계들이 어떠한 모양과 기능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시계
가 시계로써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시계의 목적인 시간
을 정확하게 가르키는 것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그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참된 목적을
발견하는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상생활 용어중에 나름이란 단어가 있다. 이 어원의 뜻은 어디까
지나 나름이요 주관적이요, 부분적이요, 피상적인 것이다. 2+2=4
라는 답 이외에 5, 6, ······ 은 제 나름대로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을
지 모르나 진리는 아니다. 제 나름이란 말이 표현상 편리한 말이기
는 하지만 제나름대로 인생을 생각하고 제멋대로 살지 말자!
인생에 있어서 종교적 신앙은 옳바른 인생관, 사생관 확립은 물론
정신력의 원천이요, 삶의 근본적인 재정립임을 명심해야겠다.
ㅡ백영식《나무 위의 사람보다 땅위의 사람이 더 위태롭다 》중에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