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인간에게 날개를 주지 않았나/ 구광렬
신은 왜 인간에게 날개를 주지 않았나/ 구광렬
라틴 문화권에는 '시에스타'(Siesta)라는 낮잠 자는 풍습이 있다. 이 낮잠 시간은 보통 점심식사 뒤 2시부터 4시까지인데, 다수의 업소나 관공서가 이 시간에는 문을 닫는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시간대에 공식적으로, 그것도 범국민적으로 낮잠을 자다니, 우리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풍습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빌어먹을 제도라 욕 많이 했다. 그러나 욕만 먹을 제도가 아니라는 걸 때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멕시코에서 유학을 마친 뒤 곧 이어진 초스피드의 서울 생활은, 누가 '김치'나 '치즈'라고 해주는 사람도 없었건만, 기꺼이 웃고 있는 멕시코 유학 시절의 나의 사진을 하루에도 몇 번씩 꺼내 보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는 속도에 생존이 달려 있고, 풍요도 거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빠르지 않으면 치열한 속도전과 무한경쟁의 패자로 낙인찍힐 것 같은 강박증에 빠진다. 신은 인간의 교만을 미워한 나머지 인간이 갖고 있던 것 중 가장 고귀한 것을 빼앗아 어디에 숨기려 했다. 그 보물을 어디다 두면 쉽게 찾지 못할까 고민하던 끝에, 인간은 높고 깊은 산과 바다는 탐험하려 들지만 정작 가까운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데는 인색하다는 것을 알고, 그 보물을 마음속에 두게된다.
이처럼 행복이라는 보물이 마음속에 있다면, 마음속을 여행하는 데는 고속력이 필요없지 않은가. 오히려 빠르면 지나쳐버리기에, 마음의 속도는 되도록 늦추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 보물을 찾으려 오로지 '빨리빨리'를 외치며 동분서주한다면 스스로 미궁에 빠지는 형국을 자초할 것이다. 날개가 있다 한들 인간이 비행기를 발명하지 않았겠는가. 최소한 파란불 신호에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하는 앞차를 향해 빵빵거리는 우리는 날개가 있다 해도 비행기를 발명했을 것이다. 문제는 현대문명의 '빠름' 자체보다 그 빠름에 길들여져 잠시도 쉬지 못하고 천방지축 질주하는 우리 마음이다. 앞차를 박을 듯 운전하고, 에스컬레이터에서조차 뛰는 민족은 그리 흔치 않다. 바쁜 세상에서 조화롭고 사랑이 깃든 삶을 꾸리자면 그 무엇보다 심적 여유가 필요하다. 때로는 소걸음으로 출근해 보라. 그리고 낮잠도 자 보라. 고래나 거북처럼 오래 사는 동물들은 한결같이 느리다. '신은 왜 인간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나?' 그 이유는 겨우내 묵혀 놓았던 찐쌀 씹듯 곱씹을 만한 것이다.
출처: 옥련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