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하나 먹으면
곶감 하나 먹으면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감 고장의 인심(순박하고 후한 인심)' 같은 속담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요즘 제철을 맞은 감은 우리에게 친숙한 과일이다. 하지만 서양에선 인기가 별로 없다.
떫은맛을 꺼려서다.
감은 크게 보아 떫은 감과 단감, 두 종류가 있다. 감나무에 달린 상태에서 익는 도중 떫은맛이
없어져 따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단감이다. 반면 수확한 뒤 인위적으로 떫은맛을 없애
줘야 하는 감이 있다. 이 중 우리 조상이 즐겨 먹은 것은 떫은 감이다. 중국인도 떫은 감을 선호
한다. 단감은 일본에서 왔다. 일본엔 단감뿐이다.
감은 여느 과일과 달리 신맛이 없다. 브릭스(Brix) 당도계로 잰 감의 당도(단맛)는 15~18로, 포
도보다는 낮지만 사과.배보다는 높다. 감 고유의 떫은맛은 녹차에도 있는 타닌의 맛 이다.
타닌은 상당한 약성(藥性)을 지녔다. 민간에선 설사.배탈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감을 권했다. 타
닌이 장의 점막을 수축시켜 설사를 멈추게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지혈 작용을
해 위궤양 치료에도 유익하다. 그러나 감을 과다 섭취하면 위에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수용성인 타닌은 다른 성분과 잘 반응한다. 특히 철분과 결합, 체외로 함께 빠져나간다. 빈혈환
자나 몸이 찬 사람에게 감 섭취를 제한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타닌은 또 장운동을
억제한다. 따라서 변비 환자는 감 섭취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우리 고유의 떫은 감을 달게 만들려면 꼭지에 침을 놓은 뒤 따뜻한 소금물에 담가 둔다(탈삽감,
담은 감, 삭힌 감). 홍시(연시)나 곶감으로 만들어도 떫은맛이 사라진다. 항아리에 짚을 깐 뒤
여기에 떫은 감을 올려놓으면 물렁한 홍시가 된다. 떫은 감은 껍질을 벗긴 뒤 꼬챙이에 꿰어
말린 것이 곶감이다.
요즘은 더 간단히 떫은맛을 없앤다. 떫은 감을 빈 상자에 놓고 그 위에 신문지를 몇 장 깐 뒤 사과
껍질을 올려놓으면 금세 홍시로 변한다. 사과에서 나온 에틸렌이 감의 숙성을 촉진하고 사과의
사과산과 감의 타닌이 중화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에탄올과 물을 반씩 섞은 뒤 떫은 감의 꼭지 부분이 젖을 만큼 스프레이로 뿌려 주는 방법도 있다.
이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따뜻한 방에 사나흘 놓아 두면 떫은맛이 제거된다. 에탄올 대신 소주를
써도 되나 시간은 조금 더 오래 걸린다.
곶감은 바싹 말린 건시(乾), 반쯤 말려 냉동 보관해 먹는 반건시(半乾)로 분류된다. 곶감은 냉동실에
넣으면 1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민간에선 숙취. 기침. 딸꾹질 환자에게 추천했다. 곶감의 표면에
묻은 흰 가루는 감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단맛이 농축된, 포도당.과당.만니톨의 결정체다.
감은 숙취해소용 과일로도 유명하다. 감에 든 과당이 알코올 분해를 돕고 칼륨이 이뇨작용을 한다.
중국의 역서 『명의별록』 엔 "잘 익은 감은 술을 해독하고 위장의 열을 내린다"고 기술돼 있다.
감나무는 열매뿐 아니라 나무.잎도 요긴하게 쓰인다. 골프채의 헤드 부분은 감나무로 만든 것을 최
고로 친다. 감잎은 비타민 C.폴리페놀이 풍부해 항산화 효과를 지닌다. 잘게 썬 감잎을 물에 넣어
우리거나 가볍게 끓이면 감잎차가 만들어진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