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정신
최근 한국 전통음식 비빔밥에 이야기를 입혀 동화를 발간했다. 옛날 온 고을(전주)사
람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서로를 미워하다 음식을 가져와 한데 섞어 먹으면서 화합하
고 재앙도 피한다는 줄거리다. 비빔밥에 내재된 공동체, 화해, 상생의 이미지에 착안하
여 시도한 작업이었는데,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아 제법 보람을 느끼고 있다.
비빔밥은 많은 재료들이 밥과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에 재료 생산부터 비비기까지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만들 수 없는 음식이다. 따라서 만들어서 즐기기까지 여럿
이 함께하는 이상적 공동체를 상징하며,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충돌을 치유할
수 있는 교훈도 내포돼 있다고 본다. 이렇듯 우리가 예사롭게 여기는 음식 하나에도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와 교훈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비빔밥의 정신은 두루 섞이고 어우러져 보다 풍부한 맛을 자아내고 이를 나눠먹는
데 있다. 서로 다른 색깔과 식감, 영양을 가진 재료들이 한 그릇에 비벼내는 최고의
시너지, 바로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비빔밥의 맛이다. 나는 이것이 다문화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최근 다문화 가
정, 다문화 사회 등의 용어를 빈번하게 접하고는 있지만,아직까지 이민이나 다문화의
개념을 특이하고 생소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단지 근대에 이르러
그 규모가 커지고 빈도가 높아지고 있을 뿐, 여러 민족의 융합이란 인류의 역사 이래
계속되어 온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인데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격한 의미에서
인종적으로 단일 나라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문화란 결국 이질적인 문화가 비
빔밥처럼 서로 풍미 있고 영양가 있게 섞여 나타난 역사이지 않은가. 나만 해도, 집안
기록에 의하면 가문의 시조가 오래 전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것으로 되
어 있다.
독일의 낭만주의 철학자 헤르더는 함께 공존하는 다양한 민족을 '신의 정원에 핀
수많은 꽃들.' 이라는 말로 유려하게 비유한 바 있다. 헤르더의 표현을 빌려 나는 이들
을 이렇게 비유하고 싶다. '군침 도는 비빔밥에 가득한 각양각색의 향기로운 나물들.'
나름의 사연으로 고향을 떠나 온 이민자들이지만, 머지않아 각자의 향기를 머금고 조
화롭게 어우러진 이들이 우리 문화를 보다 풍요롭고 비옥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라종일 님/ 우석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