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서
흰색의 고풍스런 인도제 앰배서더 자동차에서 내린
달라이 라마는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사르나트의 불탑
옆에 임시로 마련된 연단을 향해 걸어갔다. 수백 명에
이르는 순례자와 수도승들이 그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1월이었고, 티베트 지도자는 인도에 있는 불교 성지
들을 모두 둘러보는 매우 드문 순례 여행을 시작했다. 붓다가 깨
달음을 얻고 나서 처음으로 설법을 행한 장소 사르나트가 그 첫번
째 도착지였다. 자신들의 상표처럼 된 밤색 승복을 차려입은 스무
명 가량의 티베트 고승들이 저마다 손에 향묶음을 들고서 달라이
라마를 환영하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나는 달라이 라마의 놀라운 자세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고승들 쪽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들보다 거의 두 배나 더 깊
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티베트 수도승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
의 둥근 어깨는 마치 곱추처럼 앞으로 굽어 있었다. 겸손함을 나
타내기 위한 무의식적인 몸짓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구적인 상
태로 굳어진 탓이었다. 티베트 불교의 원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 라마승들과 달라이 라마는 따뜻한 동지애적인 인사를 나누었
다. 이 연로한 영적 스승들은 마치 누가 더 낮은 자세로 인사를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경쟁하는 듯했다.
노란색 금잔화로 장식한 연단의 의자로 걸어가다 말고 티베트
지도자는 잠시 멈춰 서서10층 높이의 탑을 바라보았다. 그 특이
한 형태의 건축물은 윗부분이 유선형이 아니라 평평하다는 점을
빼면, 구소련의 육중한 2단계 로켓과 약간 닮아 있었다. 2천 년
전에 지어졌고 해마다 어김없이 장맛비에 시달렸을 것을 생각하
면,그 탑이 아직까지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 앞으
로 있을 대대적인 보수에 대비해 탑은 대나무 보호대로 완전히 둘
러싸여 있었다. 순례자들은 그 대나무 보호대의 낮은 쪽 칸에다
셀 수 없이 많은 흰색 스카프를 묶어 놓았다.
그 탑은 붓다가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 첫 설법을 행한 장소에 세워졌다. 많은 불교도들에게 사르나
트는 불교의 탄생지와 같은 장소다. 붓다가 세상을 떠난 이후
1,500년 동안 불교는 인도 땅에서 꽃을 피웠다가 이슬람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지난 30년 전부터 사르나트는 다시 한
번 불교 사상의 중심지가 되기 시작했다. 불교의 모든 종파들을
대표하는 10여 곳이 넘는 새로운 절과 사원들이 세워졌으며, 해
마다 순례 시즌이 되면 수많은 불교도들이 모여들었다.
달라이 라마는 사르나트가 그에게 깊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고
전에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1959년 티베트를 탈출한 직후에 그
는 이곳을 순례했다. 그보다 몇 주 앞서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한
2천 명의 헐벗은 티베트 인들이 이 거대한 불탑 앞에서 그를 기다
리고 있었다. 그들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설산을 넘어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