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의향기 2012. 9. 14. 10:15

 

 

  "하지만 물론 존재의 무상함과 공의 진리는 매우 강력하게 깨

닫고 있지요.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기도 하구요.  특히 공의 개념

에 대해서는요."

  김용옥은 작은 노트를 꺼내 받아적기 시작했다.  달라이 라마는

그 한국인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공이란 상호 의존 또는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나가르주나는 2세기경의 인도인 스승으로, 그의 가르침은 티베

트 불교의 토대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의 말이 이어졌다.

  "공은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은 텅 빈 것

이 아니라 가득 차 있습니다.  공의 진리를 깨닫는 것, 공에 대한

앎을 터득하는 것······. 나는 내 자신이 공에 대해 약간의 지적인

이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은 ㅡ 당신은 그것을 상호 의존

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ㅡ 우리의 시각을 넓혀 줍니다.  세상

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

각을.  그것은 실제로 넓어집니다.  전체적인 시각을 갖는 데 그것

은 큰 도움이 됩니다."

  달라이 라마는 잠시 한국인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통역 담당 승

려인 락도르에게 티베트 어로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달라이 라마

옆의 바닥에 앉아 있던 락도르가 그 학자에게 물었다.

  "커피? 아니면 차를 드시겠습니까?"

  그 학자가 말했다.

  "아무거나. 어······ 차로 주십시오."

  달라이 라마가 즉석에서 고민을 덜어 주었다.

  "커피를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러자 김용옥은 얼른 생각을 바꾸었다.

  "아, 그럼 커피로 하죠."
  달라이 라마가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하버드가 한국인 한 사람을 미국인으로 만들어 버렸군요."

  달라이 라마의 농담에 그 한국인은 다시 차를 달라고 정정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난 너무 미국식으로 변하긴 했지요.  하지만 비록 내

가 외국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긴 했지만, 한국에선 나를 누구보다

도 전통적인 사람으로 여깁니다."

  달라이 라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은 일이에요."

  김용옥이 자신의 윤기 나는 검은색 두루마기를 두드려 보이며

말했다.

  "이 옷만 해도 내 손으로 직접 디자인한 것입니다.  평소에도 나

는 전통적인 복장만 입습니다.  서양 스타일 옷은 절대로 입지 않

습니다."

  김용옥은 두 명의 사진사와 한 명의 비서를 인터뷰에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중 한 젊은 사진사는 측면에서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

고 있었다.  이때 김용옥이 달라이 라마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 사

진사에게 뭐라고 간단히 말하자, 그 청년은 얼른 달라이 라마 뒤

편으로 이동해 자신의 고용주에게 더 잘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위치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