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의향기 2012. 10. 27. 18:47

 

 

문에 대기 중에서 무력감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때 나는 창문 위쪽의 나무틀 부분에 작은 마이크가 부착되어

있고, 외부로 통하는 틈새로 전선이 한 가닥 이어져 있는 것을 발

견했다.  한 수도승이 내게 그 전선이 달라이 라마의 침실에 설치

된 FM 수신기 스피커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럼으로

써 수도승들의 기도 소리를 달라이 라마의 방에서도 들을 수 있다

는 것이었다.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도 달라이 라마는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그는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정신적으로 그곳에 함께 있기를

원했다.  이 집단적인 에너지,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 소리는 만다

라가 의식에 따라 파괴되어 강물 속으로 떠내려갈 때 세상에 함께

전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달라이 라마는 병상에 누워서도 계속 이

의식에 참가할 것이다.  깨어 있는 의식으로 모두의 기도에 동참하

려고 노력하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인간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심에 서 있는 그 한국인 무용수는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두 눈은 감겨져 있고, 얼굴에는 광기 어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동료 무용수들이 치는 단절음의 북소리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떨며 미친듯이 앞뒤로 머리를 흔들었다.  무용수는 모두 여섯

명으로, 분홍색 저고리와 흰색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몇 명

은 분홍색과 노란색 방울술이 달린 과장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보드가야의 칼라차크라 입문 행사에 참가하러 온 꽤 많은

한국인 불교 신자들 중 일부였다.  한 티베트 라마승의 아침 강론

이 끝난 뒤 그들은 수도승들의 관심을 달라이 라마의 불안한 건강

상태로부터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약간의 여흥을 제공하기로 마

음먹었다.

  그때 어디선가 늙은 티베트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돌연 춤을

추고 있는 한국인 무용수들 한복판으로 끼어들었다.  그녀는 느릿

느릿 미끄러지듯 앞뒤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일단 리듬을 타자

그녀는 흥에 겨워 자기식대로 팔을 내뻗으며 열정적으로 몸을 꼬

고 발끝으로 돌기도 했다.  그녀는 목에 두르고 있던 긴 파란색 스

카프를 풀어 머리 위에서 돌리고 또 돌렸다.  그것은 그녀의 통 넓

은 티베트 의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수도승들은 그녀의 춤에 매혹되었다.  흰 머리를 쪽을 진 그 연

약한 티베트 노파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한국인 무용수들과 춤 솜

씨를 겨루고 있었다.  관중들은 함성과 휘파람으로 그녀를 부추겼

다.  여섯 살 가량 된 어린 동자승은 더 잘 보기 위해 나이 먹은 수

도승의 어깨에 올라 앉아 있었다.  무뚝뚝한 인도 경찰관 한 명도

군중을 통제해햐 하는 자신은 본분을 잊고서 멍하니 서서 바라보

았다.  노파는 얼굴에 평온한 미소를 지은 채 주위 사람들의 시선

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나이든 서양 여자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믿을 수 없다

는 듯 고개를 젓더니 가까이 있는 수도승 한 명에게로 다가갔다.

승려가 쳐다보자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티베트 노파

의 춤을 흉내내듯 팔과 어깨를 빙빙 돌렸다.  승려는 마음씨 좋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한 번 두들겨 주고 나서 역시 엄지손가락

을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