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함께 꽃이되네

더위를 피해서 뭣하리!

해탈의향기 2012. 6. 27. 11:26

 

 

 

동산洞山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다.

 

"더위가 닥쳐오니 어떻게 피하리까?"

 

"무엇 때문에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

 

"어디가 더위 없는 곳입니까?"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덥다.  지구온난화 덕분인지 여름

을 맞는 체감온도는 해마다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 하긴

본래부터 '삼복더위' 라고 했으니 더울 때가 되어 더운 것

인데 중생들은 이를 무슨 새로운 사건이라도 생긴 것처럼

해마다 별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무더위' 라는 낮시간

대에 국한된 더위의 고전적 표현은 이제 '더워서 잠 못 이

루는 밤' 이라는 "열대야熱帶夜' 로 이어졌다.  여름을 앞둔

일기예보의 으름장은 에어컨 수요를 더욱 부채질한다.  하

지만 실내를 시원하게 만든 과보로 바깥 기온을 더 뜨겁

게 만든다는 사실은 잊고 산다. 어쨌거나 더 큰일은 더운

것보다는 더워야 할 때 제대로 덥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건 재앙이다.

  여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에도 두 종류가 있다.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피서파避署派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열

치열熱治熱'을 외치는 영서파(迎署派 더위에 맞서고자 하는 부류)

도 있기 마련이다.  사실 선종 입장은 피서파가 아니라 영

서파를 추구한다.  무정물인 연꽃은 더위를 즐기는 모양새

다.  한창 더울 때 한반도 곳곳에서 연꽃축제가 열리기 때

문이다.  더위를 이겨내는 당당한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

금 더위조차 잊게 한다.  굳이 분류하면 연꽃도 영서파에

속한다 하겠다.

  예전에 추운 정월 대보름날 미리 '더위팔기' 를 했다.  아

침 일찍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재빠르게 그 사람의 이름

을 부른 뒤 "내 더위 사가거라" 하고 외치면 끝난다.  그 공

덕으로 그 해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당해야 한다면 이건 불공평한

'일이다.  모든 거래는 늘 동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위를

사라' 라는 말을 듣더라도 긍정하지 않고 도리어 '내 더위

먼저 사가시오' 라고 반격하면 오히려 상대방의 더위까지

떠안고 오게 된다.  혹 떼려다가 혹 붙이는 셈이다.  이를

'학(謔 농지거리)'이라고 이름 붙였다.

  더위가 없는 곳은 없다.  성경에는 '땅이 있을 동안에 추

위와 더위가 쉬지 않으리라' 하였다.  이슬람의 금욕정진

기간인 '라마단' 은 그  뜻이 '타는 듯한 더위'라고 했다.

더위를 수행으로 극복하자는 뜻이 깔려 있다.

  정조대왕의 어록인『일득록日得錄』에는 나름대로 성군다

운 피서법이 나온다.

 

 

  더위를 물리치는 데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책을 읽으

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

이 생겨 바깥의 더운 기운(外氣)이 자연히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

 

 

  독서삼매를 통하여 더위를 잊고자 하는 경지를  유감없

이 보여주고 있다.

 

 

  어떤 납자가 노숙(老宿)에게 물었다.

 

  "날씨가 더우니 어디로 피해야 합니까?"


  "끊는 기름 가마솥으로 피하라."

 

 

  더 과격한 선어록의 표현을 빌리자면 '더운 날 시원하

고 싶다면 화탕노탄火湯爐炭 속을 향해서 뛰어들라' 라고 했

다. 화탕은 물이 펄펄 끓는 곳이고 노탄은 숯불이 벌겋게

불붙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말에 대하여 무비 스님은 이렇게 해석했다.

 

 

  더위를 의식하고 사는 것 자체가 열렬하게 그 무엇인가에

마음을 쓰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일생을 던져도 아깝지 않

은 일에 마음을 쓴다면 그 까짓것 더운 것이 뭐 그렇게 문제될

것이 있겠는가? 열심히 정진하면 더위도 잊는다.  덥다는 것은

제대로 정진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화탕노

탄의 불처럼 치열하게 정진하라.  더위를 의식한다면 그게 뭐

제대로 된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조당집』5권 「운암」편에는 동산洞山 선사의 말을 인용하

여 이렇게 주석을 붙이고 있다.

 

 

  "마치 어떤 사람이 화탕노탄 지옥에 들어가도 타거나 데이

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영원히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떤 곳에 있다고 할지라도 영원히 휴식을 얻게 된

다."  그렇게 된다면 이산 연 선사 발원문에서 말하는 "화탕지

옥 끓는 물이 감로수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도 못 알아듣는

녀석들을 향하여 진정극문(眞淨克文, 1025ㅡ1102)선사는"이 법문

의 뜻을 그래도 모르겠거든 더위 속에서 그냥 여름을 보내라"

라고 비틀어서 질책하고 있다.

 

 

  이 모든 시시비비에 대하여 목암법충(牧庵法忠, 1084ㅡ1149)

선사는 압권의 일갈을 남겼다.

 

 

  "더위가 닥치면 어떻게 피하리오?"

 

  "피해서 무엇하리오."

 

 

 

 

글 / 원철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