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서
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익살스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젖히
고 웃음을 터뜨렸다.
"5시 30분이나 40분쯤에는 저녁 차를 마십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과 작별입니다."
그를 알고 나서 처음으로, 그는 나를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자고 초대했다.
달라이 라마는 숄을 풀어 그것으로 배를 따뜻하게 감쌌다. 그런
다음 염주를 무릎에 놓고, 승복 자락을 가부좌 튼 다리 밑으로 접
어 넣은 뒤, 시계를 팔꿈치까지 밀어올렸다. 그는 등을 쭉 펴고 몸
을 앞으로 한 번 흔든 뒤, 똑바로 앉았다. 이제 명상할 준비가 끝
난 것이다.
명상을 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내가 티베트에서 보아 온 은둔
수행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은둔 수행자들은 히말라야 높
은 곳에 있는 작은 동굴에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으며, 음
식은 충실한 제자들이 날라다 주었다. 그들의 삶은 오직 영적인
수행에 집중되어 있었다. 달라이 라마가 그의 1평방미터의 방석
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을 때, 비록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긴 하
지만 그는 혼자서 외딴 은둔처에 앉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순하게 생긴 마호가니 탁자와 무릎 높이의 야트막한 목재 진열
장, 그리고 그 위에 얹힌 붉은색 사물 정리함으로 둘러싸인 그의
혼자만의 공간은 전화 부스보다도 크지 않은 아늑한 토굴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명상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깊은 상태에 이르
렀다. 시작하고서 1,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눈은 감겨져 있고,
무릎에 놓인 양 손은 규칙적으로 염주를 돌렸다. 명상이 깊어져
감에 따라 그의 머리가 앞으로 숙여졌다. 불룩한 눈꺼풀은 매번
빠른 안구 운동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구슬이 손수건
밑에서 앞뒤로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한 시간이 흘렀다. 달라이 라마는 명상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
은 상태에서 오른쪽에 있는 나무 진열장 선반으로 손을 뻗어 소니
단파 라디오의 스위치를 올렸다. 시보를 알리는 귀에 익은 음이
네 번 울린 뒤, BBC 월드 뉴스가 흘러나왔다. 다람살라는 오전 6
시 30분이었지만, 영국 그리니치는 오후 1시였다. 톱 뉴스는 아리
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흐무드 압바스의
역사적인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로드맵으로 알려진, 미국이 지원하는 평화 계획안을
논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만났습니다.'
여성 아나운서가 억양 섞인 발음으로 말했고, 그녀의 목소리가
평화로운 명상 공간에서 크게 울렸다.
'만남은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샤론 총리의 사무실에서 이루어
졌으며, 안전이 주요 의제였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듣고 있는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
상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두 손바닥을 맞대고서 엄지손가락
끝으로 코를 세게 눌렀다. 그는 그 동작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
것은 마치 새로운 차원의 통찰력을 얻기 위해 가능한 한 세게 손
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누르는 것과 같았다.
여전히 명상 상태에 있으면서 그는 손을 뻗어 선글라스를 집어
들었다. 태양이 다울라다르 산 능선 위로 떠올랐고, 환한 아침 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