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전체가 불(佛) 하나 뿐
불(佛)이란 일체 우주의 대칭 대명사로 각자적 나의 본명이다.
그러므로 세상 내외면 전체가 불자 하나 뿐이다. 상상하고 감각
계탁(感覺計度) 할 수 있는 삼라(森羅)한 현실상은 불(佛)의 외면이요
불의 내면은 우주 창시 전인 세상 일체의 창조성으로 일체 요소를
갖춘 각자적 나의 본정신이요 만능적 자성(自性)이다.
이 자성이라는 것은 석가, 미륵, 아미타라는 모든 부처나 각층
하느님까지도 출현하기 전 존재다. 이 존재가 창조주로 무념무형(無
念無形) 이지만 일체 물체를 만들고 온갖 작용을 하는 것이다.
불의 외면인 세상은 역사적 순환으로 흥망이 있기 때문에 불법이
성한 때, 곧 인간이 본정신을 수습하여 살게 될 때라야 정상화된
세계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의 흥망 성쇠가
곧 세상의 흥망 성쇠 일체다.
어쨌든 존재적 가치 표준은 자성을 파악하여 임의로 운용하는 데
서 비로소 서게 된다.
자성을 파악하여 운용하는 인간이 따로 있지 않고, 누구나 본래
지녀 있는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생적 절대 평등권을 찾던
때이므로, 어느 때 어느 몸으로 어디서 무슨 생활을 하든지 열반(安
心立命)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체 존재는 대소강약(大小强弱)을 물론하고 개체 개체가 다 우주
전체라, 우주적 내적 본질인 본 정신만 갖추었다면 모래 한 알로
구르더라도, 한 가닥 풀로 나부끼더라도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어쨌든 인간이 존재적 최고위에 있게 된 점은 오직 환경에 휘둘
리지 않는 독립적 정신을 얻어 이 열반락(涅槃樂)을 누릴 수 있는 데
있는 것이다.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생령(生靈)은 생,로,병,사(生老病死), 각
각 4대 원칙적 궤도에서 미래세가 다함이 없이 돌고 도는 생활을
상속하게 된 것이 우주의 원리원칙이다.
이 지구는 50억 년 전 창건으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우주의 정기
가 점점 소모가 되므로 정기가 소모되는 대로 일체 존재의 정신도
쇠퇴된다.
그러므로 괴겁(壞劫: 末世)에 이른 이 지구 안 인류는 생각하고 행
동은 하면서도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그 정체
는 모르는 인간, 곧
인간성인 자성을 잃어버린 실성인의 집단이다. 그러므로 일체가 자
체임을 모르고 골육상잔(骨肉相殘)하는 일을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존재적 희구(希求)의 목적(目的)은 자유와 평화(涅槃) 그 것
뿐이다.
자유, 평화는 불계(佛界), 곧 진문화경(眞文化境)에서
자유라면 절대 임의로 되는데 의의가 선다. 부처님이니 하느님이
니 하는 우상도 여의고 불교니,. 예수교니 하는 조직체에서도 떠나
서 다 우주인이 되는 것이다.
곧 만능적 자아를 파악하여 운용하게 되어 절대 대 자유인으로
온갖 모양과 작용에 여의(如意)롭지 못함이 없게 된다. 절대로 자유
로운 곳에 불편이 있을 리 없으니, 자유와 평화는 이명동체(異名同體)
인 것이다. 그 자유와 평화는 불계(佛界), 곧 진문화경(眞文化境)에서
만 얻어진다.
문화의 구현화(具現化)가 불법화이고, 생활의 불법화가 참된 문화
생활이다.
문화적 가치 표준은 불교 분화체에 한계 된다. 구체적 요소로라
야 구현화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인 곧 일체 문화인의 대표는 부처
님인 것이다.
이 사바 세계의 창조주는 대자재천주(大自在天主)로 진선 진미의 치
우친 외적 문화인이라 현실계로 무너질 날이 있는 욕계(欲界)의 최
고천(最高天)인 자재천에 계신 하느님이다.
참된 문화는 천당과 지옥이 다르지 않고, 선악이 하나여, 미추(美
醜)가 둘이 아닌 균형적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곧 정신적 편안을
위주하는 것이므로 썩은 다리 밑에서 누더기를 두르고 앉았어도 천
상락(天上樂)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오직 부처님이 완인의 대표요, 표준적 문화인인데 우리
가 귀의하려는 것은 무슨 부처, 무슨 부처 그 이름을 가진 인간이
아니요, 그 알아 얻은 창조성을 말하는 것이다.
귀의불(歸依佛)이 곧 귀의(歸依) 자아(自我)이다.
현대 문화인은 자기의 선생인 부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가 많
다. 그러므로 생명이 없이 움직이지도 못하는 작품을 생명 있는 작
품이라고 한다. 문화인이라면 우주를 자체화한 일가를 이룬 인간으
로 다니는 사람을 만들고 무정물의 반응이 있는 말, 글을 쓰게 되
어야 한다.
다만 현세 문화인들은 문화의 소재, 곧 창조성을 먼저 얻어야 하
는 일까지도 모르고 오직 전생부터 읽어 온 습기(習氣)의 의존인 기
계적 문화이기 때문에 문화, 문화, 문화하고 말과 글을 쓰고 그림
을 그리면서도 문화인이란 구체화한 인간이라는 것도 모르니 인간
의 별명인 부처가 자체임을 알 리가 없다.
어쨌든 말과 글은 표현, 즉 껍데기니 물체가 없는 그림자 있지
않는 것같이 말과 글이란 껍데기 속에는 알맹이(事實)가 반드시 있
는 것조차 모르는 인간들이 과학을 어찌 안다고 비과학적이라는 말
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하고 있다.
인간이 시비 판단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석연한 현실을 가져야
하는 것쯤이나 알고 말을 하여야 할 것이다. 우선 각자적인 나의
현실인 이 육체적 존재에 대하여도 금생(今生) 뿐이냐, 전후가 있느
냐 없느냐, 있다면 어떠한 존재였더냐 하는 그 일이나마 좀 규명되
어야 생활에 대한 예산과 계획을 세울 것이 아닌가?
현실상인 우주는 깨지고 또 깨지고도 없어지지 않는 본 정신은
영존(永存)이요, 정신의 의복인 육체는 늘 갈아입게(生死反復) 되는데
인간이라면 제 옷은 제가 좀 갈아입게 되어야 할 것이다. 곧 생사
자재(生死自在)는 인간적 평범한 행동인 것이다.
어쨌든 우주 전체가 각자적 내 정신이기 때문에 정신력만 얻으면
내 맘, 내 말 그대로 나머지 없이 만유의 생리와 기능을 똑 떨어지
게 현실화한다. 내 상기(想起) 상멸(想滅)이 생사 존멸(存滅)이라, 우
주의 건괴(建壞)를 자재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예사 행동이다. 그런
인간은 어젠가 왔다가 가신 부처님만 하는 것이 아니요, 현세인으
로도 가능하다.
현실에서 증명 안 되는 것을 미래에 누가 보증할 것인가. 현실이
시공 전체라 전체적 시공이 곧 각자적인 나의 전체라. 각자가 자기
요구건이나 필요품이 자체에 갖추어 있는 것을 모르고 외계에서 구
하려고 헤매는 것이 이 지구 안 우리들인 것이다.
국보 수덕사 대웅전
불국토(佛國土)를 문화경(文化境)이라 하고, 구족신(具足身)을 불신
(佛身)이라 하고, 구현체(具顯體)를 문화체라 하는데 위의 여러 가지
설(說)은 구족신의 작품의 하나인 문화체를 소개하여 문화적 본체에
귀의하게 하려 함이다.
쳔여 년 전 3국(신라, 백제, 고구려) 때는 불법이 전성하여 생활이
불법화된 무상(無上) 문화시대였다.
그 중에도 백제 문화가 최고 수준으로 백제인 아비지란 대 건축
가가 창건하고, 다각적 문화인으로 신라의 화성(畵聖) 솔거(率居)와
같은 시대인 담징화상(曇徵和尙)의 벽화까지 겸한 건축물로 목조로는
세계에 유일인 존재요, 세계적 문화체를 압도할 만한 제일의 문화
체이자 불전(佛殿)인 대웅전이 한국 충남 예산군 덕숭산(德崇山) 수덕
사(修德寺)에 있는데 현대 건축가로서는 의도조차 할 길 없고, 현
대 문화인으로는 그 건축물을 감식(鑑識)부터 할 수 없다고 한다.
국보 중에서 최고 문화체로 인정하는 경주의 석굴암 부처님은 혹
창조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수덕사 대웅전은 건축할 사람이 없
다고 미국 고고학자가 말하는 것을 필자가 직접 작년 봄에 들은 적
이 있다.
그러나 물체란 세월과 함께 쇠퇴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최고 문
화체라지만, 천여 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 심광(心光)이 사라진지 이
미 오래고, 아직 수혼이 겨우 남아 있을 뿐 오래지 않아 사체
(死體)로 변하게 될 것이고, 좀더 지나면 형해(形骸)까지 무너져 버
릴 것이다. 이 외형적인 문화체를 소개하려는 것보다는 외적이나마
최고 문화체인 대웅전과 더불어 이 산중 여러 건물과 명소를 널리
알리어 문화체의 작가로 우리의 선조인 대문화인이 알아 얻은 진
리, 곧 각자적인 주인공이요, 인간적 소재요, 문화적 자료인 자아
를 발견(覺)하여 참된 문화 생활인 인간 생활의 개막을 이끌어 주고
자 한다.
어쨌든 문화인의 초보 지식으로, 문화적 가치 표준은 불교적 문
화체에 한계 된 것쯤은 알게 되어야, 불법을 알아서 나를 알고, 나
를 알아서 내 위치를 회복하고, 내 위치를 파악하여 내가 우주의
창조인 대문화인임을 아는, 대문화인으로서의 행동을 하게 될 것이
다.
더구나 이 덕숭산(德崇山)은 도인(道人), 곧 문화인을 기르는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 대문화인인 만공 선사(滿空禪師)가 그 손
상좌(孫上佐)인 벽초 화상(碧超和尙) 등과 퇴폐된 이 산을 몸소 개척하
시어 많은 문화인을 길러 내고, 17년 전에 입적(入寂)하셨는데, 인
걸은 지령(地靈)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문화인도 문화지(文化地)의 영기
(靈氣)의 감화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명소에 명인의 영감이 어린 이 산은 팔 면으로 갖추어진 문화지
이니 만큼 온 세계에 알리어 허망한 현실의 진실을 찾게 하는 이들
이 법회로 운집하여 고(故) 만공 큰스님의 유지와 사업의 상속자를
배출하게 될 것이라고 느끼어 이 글을 쓴 것이다.
(수덕사 견성암 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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