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과 영산회상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니 아버지가 부르신다. "인평아, 이리 오너라."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싶다. 엄하셔서 어렵기만 한 아버지가 부르신 것
이다. 방으로 들어서니 <천자문> 을 꺼내셨다.
"오늘부터 나하고 하루에 여덟 자씩 배운다."
이렇게 시작된 천자 공부는 반년쯤 지나서 마쳤다. 그리고 <동몽선습>을 배우
게되었는데, 아버지가 서울로 일을 가시게 되어 공부는 중단되었다.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이만저만 싫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큰소리로
읽고 외우고 쓰는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내 준 숙제를 하는 동안 친구가 놀자
고 불러낼 때는 여간 속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가해 보니 신기하게도
천자문을 공부한 덕택인지 특별히 따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학교 성적이
좋았다. 이때 배운 천자문 실력은 이후 일본어, 중국어를 배울 때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음악 대학에 들어오면서 장사훈 선생에게 거문고로 배운 것이 <영산회상>
이었다. 생전 처음 배우는 거문고 음악인데, 너무 담담한 음악이라 도무지 그
맛을 알 수 없었다. 특히 영산회상의 상영산은 느릿하여 이것도 음악인가 싶
었다. 그런데 시험을 본다는 바람에 낙제를 면하려고 억지로 외웠다. 이 재미
없는 음악을 외우고 나니 그제야 음악으로 들리고 맛을 알 수 있었다.
뇌 연구가 조영진 교수의 글을 읽어 보니, 한문 공부와 영산회상 같은 느린
음악은 좌뇌를 발달시킨다고 한다. 대체로 우뇌는 감성뇌. 직관뇌. 시각뇌.
음악뇌인데 비해 좌뇌는 이성뇌. 논리뇌. 언어뇌. 수리뇌이다. 말하자면 천자
문 공부와 영산회상 공부는 지구력을 길러주고, 이성적 판단과 명확한 논리
글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준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아버지의 천자문 교육과 장사훈 선생님의 거문고 레슨이
나의 좌뇌를 훈련시킨 격이 되었다. 거문고를 배울 당시에는 낙제를 면하려
고 억지로 외웠던 영산회상 가락이 약이 된 것이다.
이후부터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영산회상을 권한다. 영산회상 CD는 1만
원이면 산다. 집 안에 영산회상이 흐르도록 해보자. 단돈 만 원으로 아이의좌
뇌를 개발시키고 지구력을 길러준다니 이런 투자라면 해볼 만하지않은가?
월간 좋은생각
전인평 님글 (전 중앙대 국악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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