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스크랩] 나는 여행 사진이 어렵다 / 채승우

해탈의향기 2013. 7. 3. 03:36
좋은 인연들이 함께하는 정념수행도량 옥련암입니다

블로그에 사진 많이 올릴수록 후회
내가 '아는' 이미지만 찾아 떠난 여행… 그 사진에서 새로운 것이 무엇일까
틀에 박힌 사진 눈에 쉽게 들어오지만 내가 본 세상 아니고, 내 흔적도 없어
좋은 여행 사진은 '나'를 만나는 것




나는 여행 사진이 어렵다 / 채승우



나는 여행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여행 사진이 어렵다. 이 묵은 고민을 다시 꺼낸 것은 얼마 전 내 짝과 함께 다녀온 짧은 여행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앞으로 이어갈 긴 여행에서 좋은 동반자가 되기 위한 일종의 멤버십 트레이닝이었다. 회사원끼리도 단합대회를 가는데, 부부지간이야말로 단합이 필요하다. 이번 멤버십 트레이닝은 여행의 결과를 블로그에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흥행과 작품성에서 모두 성공한 블로그를 만들어보자는 의기투합이 이루어졌다. 소위 '파워 블로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을 많이 올려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었다. 그렇게 해 보았다. 글 하나에 사진을 스무 장쯤 첨부했다. 우리가 본 것들, 거리와 건물, 탈것과 먹을거리까지 다 올리고 나니, 후회가 슬슬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많이 올릴수록 내 여행이 발가벗겨진 듯 보였다. 사진들은 여행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스스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면 잘 찍은 사진만 올려야 할까? 사진기자로 20년 가까이 일했으니, 사진 잘 찍는 데는 자신이 있는 편이다. 특히 여행 잡지나 달력에 실릴 만한 사진은 꽤 잘 찍을 수 있다. 그전에, 여행 잡지의 사진들이 좋은 여행 사진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여행 잡지의 사진은 제아무리 감상적인 체해도, 정보를 전달하거나 독자의 시선을 끌려는 목적이 기본인 사진이다. 잡지에 실을 것도 아니면서 많은 사람이 여행 잡지 사진을 찍고 있다. 하긴 나도 그런 사진들을 보고 여행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두 달간의 인도 여행 내내 사진 교본에서 본 사진 한 장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진은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을 사진 교본이 무단 전재한 것이었다. 이런 여행 사진은 여행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품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여행지에서 입을 나풀거리는 반바지를 사고, 챙이 넓은 모자를 사는 일이 여행 사진의 시작인 셈이다. 수평선과 야자나무,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있는 이국적인 장소에 도착하는 것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머릿속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아내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은 여행 사진만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이다. 모든 여행이 이렇다면,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이미지를 찾아가는 일이 된다면,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멋진 여행 사진을 찍으러 떠나는 행위는 여행을 배반한다. 낯선 곳이라는 단어는 시각적으로 다른 곳을 의미한다. 내가 찍어 온 여행 사진에 시각적으로 새로운 것이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흔하게 반복되는 여행 사진 목록이 있다. 까무잡잡한 어린이들의 눈동자를 찍어놓고, 또는 늙은이의 자글자글한 주름을 찍어놓고 휴머니즘 운운하는 사진들도 거기에 포함된다. 거기에 덧붙이는 '소통했기 때문에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말은 한 편의 코미디다. 소통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그 순간 서로 오해를 나누었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중국의 학자 위추위는 그의 기행문 앞부분에서 학자들이 세상을 표현함에 상투적인 어휘를 사용한다는 점을 비평한다. 틀에 박힌, 관습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하는 세상은 세상에서 본 세상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세상일 뿐이다. 자신의 사진을 설명하는 데 유행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휴머니즘'이니 '소통'이니 하는 것이 그렇다. 요즘 사진판에서는 '인문학'이라는 말이 유행인 듯하다. 사진을 멋지게 꾸며주는 기법들이 있다. 석양이나 아침 빛을 이용하는 방법, 망원렌즈를 사용해서 초점의 앞뒤를 흐리게 만들어주는 방법 같은 사진 기술도 있고, 찍은 사진의 색감을 바꾸어준다든가, 각종 효과를 덧입혀주는 컴퓨터 기술도 있다. 이런 기술은 글쓰기로 치자면 위추위가 말한 상투적인 표현이다. 쉽게 눈에 들어오고 쉽게 공감되는 듯하지만, 그것은 내가 본 세상이 아니다. 그것은 내 사진이 아니고, 그런 사진 안에 내 흔적은 없다.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원스 (once)'라는 제목의 멋진 사진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사진 찍기를 총 쏘기에 비유했다. 총알은 앞으로 나가지만, 그 순간 총의 반동은 뒤로 나간다고 말했다. 사진은 총과 같이 앞과 뒤로 동시에 나간다. 본다는 행위에는 보는 이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좋은 여행 사진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좋은 여행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연결된다. 좋은 여행은 세상과 나 사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세상을 만나는 일은 결국 나를 만나는 일이고 내가 살아온 곳을 만나는 일이 되어야 한다. 큰일이다. 여행 사진이 점점 어려워진다.

좋은 인연들이 함께하는 정념수행도량 옥련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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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옥련암
글쓴이 : 거 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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