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날갯짓, 하늘색 꿈을 품다
김신영
"그는 손가락으로 비행기 날개의 강철 소골(小骨) 부분을 쓸어보며 그 속에 생명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 금속은 진동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었다(···). 다시 한 번 조종사 파비앵은 비행하는 동안 현기증도 도취도 아닌 살아있는 육체의 신비로운 작용을 경험했다." 작가 생텍쥐페리의 생명력 넘치는 펜촉이 담아낸 <야간 비행>의 한 구절이다. 극도의 긴장된 상황에서 맡은 바 임무를, 창공의 광활함을, 인간 존재의 초월성을 자신의 어깨를 닮은 비행기의 양 날개에 짊어지고 구름 속을 헤쳐 나가는 한 조종사의 이야기는 삶의 질감과 무게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한계를 극복하며 중력을 견디는 이들의 비상은 그래서 더욱 강렬한 빛깔로 물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빛깔을 찾기 위해 공군 최정예 전투기인 KFㅡ 16의 조종사가 소속된 제20전투비행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서 제20전투비행단 123전투비행대대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로 임명된 정준영대위(27)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전투기 조종사' 라는 묵직한 명칭, 검게 그을린 피부와는 달리 귀엽고 앳된 얼굴에 묻어나는 수줍은 미소로 인터뷰의 첫 장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쇠사슬 같은 걸 들고 다니면서 '엄마는 제가 지켜줄게요' 라고 했어요. 공군사관학교는 고2때 알게 됐는데, 특히 전투기 조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중학교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는 공군으로 20년 정도 근무하셨는데,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저를 보고 무척 좋아하셨을 거예요."
한 조각 한 조각 꿈의 조각을 맞추고 있는 그녀는 '여성의 특수성' 이라는 단어에 함몰되어 잠재된 능력이 재단되는 것을 거부했다. 때문에 군 조직에서 여성이라고 열외 되지 않기 위해 동등한 훈련을 받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악착같이 심신을 강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다르게 취급받을 때 자신의 나약함이 고개를 드는 것 같다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더 치열해지는 것이다.
현재 정준영 대위가 조종하고 있는 'KFㅡ16'은 첨단 항공전자장비와 뛰어난 무장운용 능력, 탁월한 기동성 등을 겸비한 고성능 전투기로, 1994년 도입된 이래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창공을 누비고 있다.
"육체적인 훈련으로 고통이 수반될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강한 정신력' 이에요. 저는 <논어>의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知之者不如好之者),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好之者不如樂之)'라는 구절을 좋아해요. 이 일은 제 평생 직업이고, 비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즐기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봐요. 좋아하는 것만큼의 끊임없는 공부는 말할 것도 없구요."
나를 넘어 진정한 '나' 를 만나다
하늘과 소통하며 '나'를 만나는 시간. 그 시간의 비행은 공간의 폭을 넓혔다 좁혔다를 반복하며 열정의 엔진을 작동시키고 있다. 바퀴가 땅에 닫는 순간 내쉰 안도의 한숨에는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9배의 중력가속도와 맞선 그녀의 땀과 투지가 배어있었다.
"첫 비행 때의 느낌은 너무 정신없어서 생각이 안나요(웃음). 사소한 실수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완벽하게 준비해야 되거든요. 오늘도 '안전 비행' 을 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으로 대범하게 행동해야 하죠."
그녀는 매일같이 기상 브리핑 및 북한의 동향을 살펴본 후, 특수 장비를 걸치고 한 시간정도 비행을 하면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고 나서 방금 전의 비행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개선점 등을 디브리핑 한다. 하늘에서의 임무가 완료되면, 행정 업무, 비행 전술과 전략에 관한 공부, 운동까지, 하루 일과는 빈 틈 없이 철저했다. 그녀는 대대 최초 여성 전투기 조종사로서 타의 모범이 되고, 선배들이 먼저 간 길에 부끄럽지 않은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래야 후배들도 길을 잃지 않고 그 궤적을 따라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대장으로 모셨던 13년 차의 대선배님이 계셨는데, 이미 조종사의 길을 걸어오신 분으로서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이해해 주셨어요. 저 역시 그분처럼 후배들에게 모범적이고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저도 올해 리더가 되는데,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에요."
여자친구들과 만나면 수다로 시간가는줄 모른다는 스물입곱의 소녀 같은 그녀는, 남자들과는 축구를 할 때면, '싸우면 반드시 이기자' 라는 집념을 지닌 대한민국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였다.
"전투기 조종사의 삶은 특별한 것 같아요. 내 자신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작은 존재일 수 있지만, 나보다 배로 큰 전투기를 타고 적지에 나가면 어느 누구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며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까요. 스스로를 초월하며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거죠."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 대한민국의 멋진 공군으로 남고 싶다는 그녀의 창공은 과연 어떤 음색으로 대답해줄까. 작지만 큰 울림, 크지만 잔잔한 여운이 녹아있는 하늘색 꿈은 이제 막 힘찬 날갯짓으로 피어올랐다. 가늠할 수 없는 청춘의 활주로 위에 이카루스의 꿈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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