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에 있는 부처님 치아 진신사리를 보면서, 몇 안되는 귀중한 부처님 치아사리가 멀리 인도에서
우리나라로 오신 것은 정말로 불보살님의 가피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말세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신통을 낳는다고 합니다.
황룡사 구층탑이 하루 속히 복원되기를 빌며 옛 기사를 올려봅니다.
* * * * *
자장이 중국의 오대산 태화지(太和池) 곁을 지날 때 홀연히 신인(神人)이 출현하여 물었다.
“어떻게 이곳에 왔습니까?”
자장이 대답했다.
“보리(菩提)를 구하려는 때문입니다.”
신인이 절하고 또 물었다.
“당신 나라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자장이 답했다.
“우리나라는 북으로 말갈에 연했고, 남으로는 왜인(倭人)과 접하는데, 고구려 백제 두 나라가 변경을 침략하여 이웃의 적이 횡행하는데, 이것이 백성들의 화란(禍亂)이 됩니다.”
신인이 말했다.
“지금 당신 나라는 여자로 임금을 삼았기에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으므로 이웃 나라가 도모하려는 것이니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장이 물었다.
“고국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면 이익이 되겠습니까?”
신인이 말했다.
“황룡사(黃龍寺)의 호법룡(護法龍)은 나의 장자로써 범왕(梵王)의 명령을 받고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으로 돌아가 그 절에 구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하고, 구한(九韓)이 와서 조공하며, 왕업(王業)이 오래 태평할 것입니다. 탑을 세운 뒤에는 팔관회(八關會)를 설하고, 죄인을 용서하면 외적이 해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경기 남쪽의 언덕에 한 정사(精舍)를 짓고 함께 나의 복을 빌면 나도 또한 은덕을 갚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옥(玉)을 바치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 황룡사 진신사리 첫 공개
.
불기2550(서기 2006)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경주 황룡사터에서 발굴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석가탄신일을 기념해 2006년 5일 '불꽃 속에 피어나는 숭고한 정신, 불사리와 장엄' 특별전시회를 열고 황룡사 진신사리 5과와 사리를 담았던 팔각 모양의 사리그릇 '사리갖춤'을 공개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황룡사의 진리사리는 삼국유사에 기록과 같이 석가모니 진신사리로서 자장법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당에 간 자장법사는 사리 일백 매를 직접가지고 645년선덕여왕 14년)에 귀국하여 황룡사구층탑, 통도사 계단, 대화사탑에 나누어 모셨다고 한다.
이에 따라 황룡사 사리는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당시 삼국통일의 염원을 기원하기 위하여 탑 안에 모신 것으로 정확한 기록과 출토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진신사리 안치에 대한 문헌기록으로는 신라 진흥왕 10년(549년) 봄 양(梁)나라에서 신라의 각덕(覺德)과 동행하여 사신을 파견하면서 불사리를 봉송하여 오자 왕은 백관과 함께 경주 흥륜사(興輪寺)의 앞길에 나가 이를 맞아 들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진흥왕조에 최초로 보인다. 실물로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석조사리감이 567년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
흔히 황룡사 찰주본기로 일컬어지는 금동판은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 심초석의 사리구멍 안에 있던 사리갖춤 가운데 내함으로 언젠지 알 수 없으나 도난 되었다가 1966년에 되찾은 것입니다. 금동판은 네 개를 경첩으로 연결시켜 네모난 상자가 되는데, 한면은 문고리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의 앞뒷면에는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 인왕과 신장이 각각 2구씩 새겨져 있습니다. 나머지 세면에는 황룡사 구층목탑을 만든 경위와 탑이 기울어 경문왕 때인 817년 탑을 고친 내용 등을 새겼습니다. 구층목탑을 세운 경위는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데, 자장이 삼한의 통일과 국가의 안녕을 위해 황룡사 구층목탑을 세우자고 선덕여왕에게 건의 하여 이간 용수를 감독으로 하고 백제 장인 아비를 대장으로 삼아 높이 224자(약 80미터)의 목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출처:경주박물관>
황룡사 목탑 찰주본기(복제품), 872년. 황룡사 구층석탑 사리함의 외함으로 목탑에서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갖춤의 형태를 잘 보여 준다.
사리함 외함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는데 서역인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얼굴과 사실적인 묘사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시대에 활약한 양지스님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은 것 같다.
* 법보신문 /데일리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Young Hwan)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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