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강은교
그건 참 기적이야
산에게 기슭이 있다는 건
기슭에 오솔길이 있다는 건
전쟁통에도 나의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건
중병에도 나의 피는 결코 마르지 않았으며.
햇빛은 나의 창을 끝내 떠나지 않았다는 건
내가 사랑하니
당신의 입술이 봄날처럼 열린다는 건
오늘 아침에도 나는 일어났다, 기적처럼
- 시집『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서정시학,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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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게 살아가다 보면 삶의 소중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잊기 쉽다. 삶이 더없이 소중하고 큰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생일선물에는 고마워하면서도 삶 자체는 고마워할 줄 모른다. 흘러가는 대로 살기도하고 하찮은 일들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큰 병을 앓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들은 그때서야 아침에 눈을 떠서 붉은 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한 끼니의 식사를 위해 젓가락을 들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겸손해지면서 그 위대함을 깨닫는다.
일찍이 임제 선사는 '기적이란 물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날마다 땅 위를 걷는 기적 속에 살아가지만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다가 더는 걸을 수 없는 지경에서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중병에도 나의 피는 결코 마르지 않았으며. 햇빛은 나의 창을 끝내 떠나지 않았다는 건’ 기적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우리 모두는 기적이다. 엄청난 기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창밖 저 산 다섯 개의 능선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가난과 상처와 별별 희한한 사건사고들 가운데서도 집이 무너지지 않은 것도, 내가 쓰러지지 않은 것도 기적이다.
현재의 삶이 곧 기적이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고, 땅 위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음도 기적이다. 손을 한번 쓱 쓰다듬어서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눈먼 자에게 앞을 보게 하고, 없던 양식이 한 순간 손에 쥐어져야만 기적은 아닌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이미 크나큰 기적의 은혜 속에 살고 있다.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겐 단 한순간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간을 얻는 게 기적이라면 우리는 날마다 그 기적을 누리는 셈이다. 오직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되는 그 사실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그런 할랑하고 관념적인 기적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하루하루 근육이 증발하고 장기가 오그라드는 몸으로 기적과 같은 단식을 이어가다가 급기야 병원으로 실려간 한 생명을 극도의 조바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단식 40일째인 그는 이제 표정조차 잃었다. 표정을 짓는데 필요한 얼굴의 근력마저 소진한 상태다. 그는 포도당주사라도 한번 맞자는 담당의사의 권유에 '난 반칙은 안 한다'라며 버럭 화를 냈다. '제대로' 단식을 했음에도 아직 병원에 실려 가지 않았으며, '해봤는데 자기는 6일 만에 쓰러졌다'는 한 여당의원의 '쇼'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마음을 집중할 때 기가 생겨나고, 그 기가 쌓일 때 기적은 일어난다. 유민 아빠를 지켜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통스런 사람들, 그의 목숨을 염려하며 단식을 말리고 기도하는 사람들, 무겁고 미안한 마음으로 단식에 동참한 사람들, 특별법 제정 촉구 탄원에 서명하고 지지한 사람들, '진상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던 대통령께서 이제 와서 발을 빼는 태도에 분노하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의 결기가 다 기운의 원천이다. 그 기들의 적분으로 기적처럼 그의 ‘입술이 봄날처럼 열’릴 것이며,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으리라.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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