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에게로 향했다. 젊은이 옆에는 몽골인의 얼굴을 하고 머리
를 양쪽으로 길게 땋은 늙은 여인이 서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젊은이는 손에 흰색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비록 두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달라이 라마는 그가 장님
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몸을 굽혀 젊은
이의 손을 잡고서 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는 이 앞
못보는 젊은이가 어디서 왔는지 그동안 치료를 받아 보기는 했는
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수많은 군중들 틈에서 권리를 빼앗긴 사
람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발견하는 달라이 라마의 놀라운 능력
에 경탄했다.
나중에 나는 롭상 틴리라는 이름의 그 젊은이가 자신의 어머니
와 함께 티베트 북동부에 있는 암도 지방의 마헨에서 왔다는 사실
을 알았다. 그는 열다섯 살에 넘어져서 심한 뇌진탕을 겪은 뒤 시
력을 잃었다. 한차례 수술을 해서 부분적으로 시력을 되찾긴 했지
만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장님이 되었다. 수년 동안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쳉두와 베이징의 큰 병
원으로 데려가 재수술을 받게 하고, 침과 뜸 요법으로도 치료했
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시신경이 심한 손상을 입어 다
시는 앞을 못 보게 되리라는 말만 들었들 뿐이었다.
2002년 초 보드가야에서 달라이 라마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칼
라차크라 입문 행사를 이끌 것이라는 말을 듣고 아들은 꼭 그곳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달라이 라마 가까이에 있고 싶었고, 그
의 법문을 듣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말리려고 애를 썼
다. 티베트 북동부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을 거쳐 인도까지 간
다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젊은이의 어머니는 자신이 가진 보석과 가축을 전부 팔고
친척들로부터 돈을 빌려 여행에 쓸 비용을 긁어모았다. 그녀는 아
직도 아들이 언젠가는 시력을 되찾게 되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면 불교의 탄생지인 인도에서 행운을 얻게 될지도 모
를 일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어머니와 아들과 잠깐 얘기를 나눈 뒤,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젊은이는 달라이 라마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한
순간이라도 더 붙잡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수행원 중 한 사람
에게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개인 주치의 중 한 사람이며 다람살
라의 델렉 병원 원장인 체텐 도르제 사두샹이 이 젊은이를 진찰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나 알아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나서 달라이 라마는 마하보디 사원을 떠나 티베트 사원
으로 걸어서 돌아갔다.
달라이 라마가 보드가야에서 그 눈먼 젊은이를 만나고 난 이틀
뒤, 나는 평소처럼 티베트 사원 2층의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의 비서실 직원에서부터 경호 요원들에 이르
기까지 모두 수행원들이 그곳에 모여 다 함께 식사를 했다. 저녁
메뉴는 대개 소박한 만두와 야채를 넣은 국수로 이루어진 전통적
인 티베트 음식이었다.
내가 국수를 먹기 시작했을 때, 체텐 도르제 사두샹이 내 옆으
로 미끄러지듯 다가와 앉았다. 우리는 두 해 전 다람살라 북부의
고대 티베트 왕국인 스피티에서 처음 만났다. 잘 알려진 대로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