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을 눌러야 하지는지에 대해서도 애를 먹곤 하십니다."
비서실장은 대개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
러내지 않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텐진 게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가 좀더 설명을 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손을 얼
굴 가까이 대고서 쫙 펼친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손가락들은 켬퓨터보다는 십자 드라이버 같은 연장을 사용
하는 데 훨씬 알맞습니다."
그는 이제 오른손을 목수의 연장처럼 만들어 보였다. 카메라 셔
터 누르는 소리들이 최고조에 달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말에
열중한 채, 손가락들을 움직여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다 보니, 이제 최소한의 것들
은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에 있어
서는 구제불능에 가깝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둘째 손가락으로 서툴게 테이블을 서너
번 두둘겨 보였다.
회견이 끝나자, 기자들이 달라이 라마와 악수를 하기 위해 앞다
퉈 몰려들었다. 금발 여성도 그 가운데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그
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에 바싹 얼굴을 들이대고는 느닷없이
둘째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세게 눌렀다. 그녀는 놀라서 비명
을 지르며, 재빨리 오른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달라이 라마는 어렸을 때부터 장난기로 유명했다. 그것은 나이
가 칠십을 넘은 지금도 여전했다. 그와 함께 많은 여행을 하면서,
나는 그가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고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최근 들어, 달라이 라마는 국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그가 티
베트 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라는 것, 가장 눈에 띄는 불교의 상
징이라는 사실은 대중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서구 세계에서
그는 어떤 면에서는 고행하는 슈퍼스타, 또 어떤 면에서는 귀여운
판다 곰처럼 인식되고 있다.
2003년 달라이 라마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비콘 극장에서 행
한 4일 동안의 특별 강론은 완전히 표가 매진되었다. 극장 입구의
전광판은 이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현재 공연- 달라이 라마. 다음 공연- 트위스트 시스터와 매
운 참치'
강론이 끝난 다음 날, 달라이 라마는 맨하탄 한복판 센트럴 파
크에서 공개 강연을 했다. 눈부신 하늘 아해, 동쪽 잔디밭은 그의
충실한 팬들, 영적인 구도자들, 그리고 단순히 호기심에서 온 사
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거대한 무대가 세워지고, 무대 양쪽에는 두 대의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었다. 잔디밭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우거진 나무들 뒤편에
서, 나뭇잎 사이로 간신히 내다보아야만 했다. 명실상부하게 그해
최대의 이벤트였고, 10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배우 리처드
기어가 주관한 이 행사는 그야말로 작은 우드스탁(1969년 뉴욕 근
교의 베델 평원에서 개최된 록 페스티벌. 지미 헨드릭스, 존 바에즈 등 당시
최고의 가수들이 참가했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센트럴 파크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