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용 서

해탈의향기 2012. 6. 25. 06:22

 

 

 

버튼을 눌러야 하지는지에 대해서도 애를 먹곤 하십니다."

  비서실장은 대개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

러내지 않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텐진 게셰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가 좀더 설명을 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손을 얼

굴 가까이 대고서 쫙 펼친 손가락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손가락들은 켬퓨터보다는 십자 드라이버 같은 연장을 사용

하는 데 훨씬 알맞습니다."

  그는 이제 오른손을 목수의 연장처럼 만들어 보였다.  카메라 셔

터 누르는 소리들이 최고조에 달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말에

열중한 채, 손가락들을 움직여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다 보니, 이제 최소한의 것들

은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에 있어

서는 구제불능에 가깝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둘째 손가락으로 서툴게 테이블을 서너

번 두둘겨 보였다.

  회견이 끝나자, 기자들이 달라이 라마와 악수를 하기 위해 앞다

퉈 몰려들었다.  금발 여성도 그 가운데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그

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에 바싹 얼굴을 들이대고는 느닷없이

둘째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세게 눌렀다.  그녀는 놀라서 비명

을 지르며, 재빨리 오른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아무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달라이 라마는 어렸을 때부터 장난기로 유명했다.  그것은 나이

가 칠십을 넘은 지금도 여전했다.  그와 함께 많은 여행을 하면서, 

나는 그가 주어진 어떤 상황에서도 즐겁고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근 들어, 달라이 라마는 국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그가 티

베트 인들의 정신적인 지도자라는 것, 가장 눈에 띄는 불교의 상

징이라는 사실은 대중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서구 세계에서

그는 어떤 면에서는 고행하는 슈퍼스타, 또 어떤 면에서는 귀여운

판다 곰처럼 인식되고 있다.

  2003년 달라이 라마가 뉴욕을 방문했을 때, 비콘 극장에서 행

한 4일 동안의 특별 강론은 완전히 표가 매진되었다.  극장 입구의

전광판은 이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현재 공연- 달라이 라마.  다음 공연- 트위스트 시스터와 매

운 참치'

  강론이 끝난 다음 날, 달라이 라마는 맨하탄 한복판 센트럴 파

크에서 공개 강연을 했다.  눈부신 하늘 아해, 동쪽 잔디밭은 그의

충실한 팬들, 영적인 구도자들, 그리고 단순히 호기심에서 온 사

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거대한 무대가 세워지고, 무대 양쪽에는 두 대의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었다.  잔디밭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우거진 나무들 뒤편에

서, 나뭇잎 사이로 간신히 내다보아야만 했다.  명실상부하게 그해

최대의 이벤트였고, 10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배우 리처드

기어가 주관한 이 행사는 그야말로 작은 우드스탁(1969년 뉴욕 근

교의 베델 평원에서 개최된 록 페스티벌.  지미 헨드릭스, 존 바에즈 등 당시

최고의 가수들이 참가했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센트럴 파크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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