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종일 백지 공책에 금강경을 베껴 쓸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온
종일 백팔배, 천팔십배, 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온 종
일 벽을 마주 보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것은 사경을
한다거나, 기도를 한다거나, 참선수행을 하기 위한 어떤 것도 아니었다. 내
앞에 닥쳐온 고통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것 밖에 다른 어
떤 선택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곳에는 원망이나, 기
원, 황홀경 같은 밖으로 향하는 기운을 내 안으로 돌이켜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덤벼들던 고통의 발톱을 따뜻하게 껴안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오로지 그냥 쓰는 일, 오로지 그냥 절하는 일, 오로지 그냥 앉아보는 일,
나의 부처님 공부는 그 자리에서 시작이 되었으며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
없으리라 생각한다.
ㅡ 김정아 《나의 부처님 공부》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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