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 앉아 산마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속뜰에서
는 맑은 수액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난다. 혼자서 묵묵히
숲을 내다보고 있을 때 내 자신도 한 그루 정정한 나무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으면, 그저 넉넉하
고 충만할 뿐 결코 무료하지 않다.
이런 시간에 나는 무엇엔가 그지없이 감사드리고 싶어진다. 하
루 24시간 중에서 맑고 잔잔한 이런 여백이 없다면 내 삶은 탄력
을 잃고 이내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올해도 모란은 흐드러지게 피었었다. 겨울 날씨가 춥지 않아서
였던지 예년보다 한 열흘 앞당겨 피어났다. 모란 밭 곁에서 같은
무렵에 피어난 노란 유채꽃이 모란의 자주색과 아주 잘 어울렸
다. 꽃의 빛깔과 모양이 같아서 유채꽃이라 했지만 사실은 갓꽃
이다. 지난해 겨울 김장을 하고 남겨 둔 갓인데 봄이 되니 화사한
꽃을 피운 것이다.
철새로는 찌르레기가 맨 먼저 찾아왔다. 달력을 보니 4월9일,
쉿소리의 그 목청으로 온 골짝을 울리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
다. 아주 반가웠다. 모란이 피어나기 시작한 날 밤에 소쩍새는 함
께 목청을 열었다. 4월 16일로 적혀 있다. 잇따라 쏙독새(머슴새)
도 왔다. 머지않아 꾀꼬리와 뻐꾸기도 찾아올 것이다. 이렇게 철
새들이 찾아와 첫인사를 전해 올 때,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내 마
음은 설렌다. 새의 노래는(울음이 아니다)잠든 우리 혼을 불러일으
켜 준다. 굳어지려는 가슴에 물기를 보태 준다.
지난 4월 초, 남쪽 바다 한가운데 외떨어져 있는 섬 백도를 보
고 오는 길에 거문도에 들렀었다. 거기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으
로 세워진 등대가 있는데, 그 등대로 가는 동백나무 숲길에서 밀
화부리 소리를 듣고, 나는 그날 종일 행복에 겨웠었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무상으로 열어 보이고 있
는데, 일상에 찌든 사람들은 그런 선물을 받아들일 줄을 모른다.
받아들이기는 그만두고 얼마나 많이 허물며 더럽히고 있는가. 받
아들이려면 먼저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지
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 찌든 버릇 때
문에 모처럼 자연의 품 안에 안겨 있으면서도 입 다물고 귀 기울
이며 지켜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수첩을 펼쳐보니 지난 4월 9일 오후
로 적혀 있다. 할 일이 있어 외부로부터 방해 받고 싶지 않은 날
은 신발을 부엌에 들여놓고 덧문을 닫아 버리는 수가 더러 있다.
그날도 읽던 책을 마저 읽으려던 참인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젊은 남녀 한 쌍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두 시간 가까이 여자 혼자서 뭐라고 연방 지껄여 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끊임없이 쏟아 내었다.
방음이 되지 않는 한옥이라 방 안에서 하던 일에 집중이 될 턱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면서 그 지껄임이 그치기만
을 기다렸다.
되지도 않는 지껄임을 아무 대꾸도 없이 듣고 있는 사내 녀석
의 인내력에 나는 놀라웠다. 아마 그 녀석은 사랑에 빠진 모양이
었다. 사랑에 빠지면 눈도 멀고, 귀도 멀어 쓰잘때기 없는 지껄임
도 음악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까. 문 열고 나가서 썩 내려가라고
고함이라도 쳐주고 싶은 생각이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사랑
에 빠져 골이 빈 연인들이 무안해 할까 봐 나 또한 인내력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쏟아 놓는 말을 누군가가 가까이서 듣고 있는 줄을 안
다면 그렇게 도나캐나 마구 쏟아 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명심하
라. 누군가 반드시 듣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건 뜻을 담은 말이건 간에 듣는 귀가
바로 곁에 있다. 그것을 신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고, 영혼이라
고 부를 수도 있고, 불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
은 곧 그 사람의 속뜰을 열어 보임이다. 그의 말을 통해 겹겹으로
닫힌 그의 내면 세계를 훤히 알 수가 있다.
모처럼 꽃이 피어나고 새잎이 돋아나는 싱그러운 신록의 숲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면서 가
만히 있기만 해도 충만할 텐데 사람들은 그럴 줄은 모른다. 일상에
때 묻고 닳아진 자신을 그 어느 때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겠는가.
입 다물고 귀 기울이는 습관을 익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
면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말과 생각이 끊어진 데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카톨릭의 관상 수도자 토마스 머튼 신부는 그의<관상기도>에
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침묵으로 성인들이 성장했고, 침묵으로 인해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
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찾고 있지만 침묵 속에 머무는 이만이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경탄할 만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의 내부는 비어 있다. 무엇
보다도 침묵을 사랑하라. 침묵은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열매를
그대들에게 가져올 것이다."
불교의 초기 경전인<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
람은 말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기 자신을 찍고 만다."
우리는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번은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면서 내 인내력을 시
험한 적이 있다. 담배 연기를 몹시 싫어하는 나는 기차 여행 때는
으레 금연칸을 탄다. 금연칸에는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과 부녀
자들이 주로 타게 마련이다.
그날도 나는 금연칸을 선택했다. 내 자리에서 한 줄 건넌 앞자
리에 어린애 하나를 거느린 30대 초반의 아주머니와 그의 친구인
듯한 그 또래의 여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열차가 한강교를 지
나자마자 아이를 거느린 아주머니가 친구를 상대로 말문이 열기
시작했다. 친구는 어쩌다 한마디씩 대꾸를 할 뿐 한쪽에서만 잠
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지껄여 댔다. 아이도 지겨운지 말 많은
엄마 곁을 떠나 복도로 뛰어다녔다.
새마을 열차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10분이 걸리는데, 부
산역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그 여인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계속 쏟아 놓았다. 그런 여인을 아내로 맞
아 한평생을 살아갈 남자는 귀머거리가 아니면 존경할 만한 인내
력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날의 새마을호는 연료의 힘으로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여인
이 계속 쏟아 놓은 '입심'으로 달린 것이 아니었을까. 귀가 멍멍
해진 채 부산역에 내린 그때의 내 느낌이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절대로 금연칸을 타지 않는다.
자신의 영혼을 맑히기 위해 매주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지켰던
마하트마 간디는 이와 같이 타이르고 있다.
"먼저 생각하라, 그런 다음에 말하라. '이제 그만'이라는 소리
를 듣기 전에 그쳐라. 사람이 짐승보다 높은 것은 말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능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
이 글을 끝맺으려는 바로 지금 첫 꾀꼬리 노래가 들려오고 있
다. 5월6일, 해마다 같은 시기에 찾아오는 이 놀라운 질서. 자연
의 소리는 사람의 소리에 견줄 때 얼마나 맑고 신선한가. 우리는
그 자연의 소리를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라.
ㅡ 법정스님《맑고 향기롭게》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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