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처님 공부

맑은 기쁨/법정스님

해탈의향기 2013. 3. 10. 10:50

 

 

 

  저녁 예불을 마치고 앞마루로 나가다가 이제 막 떠오르는 열나

흘 달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가, 앞산 마루 위로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월광 보살을 뇌이면서

두 손을 마주 모았다.  여름날 해거름에 더욱 부드럽고 아련하게

보이는 앞산 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은 사뭇 환상적이다.  우리네

고적적인 표현에 달덩이 같이 예쁜 얼굴이란 말이 있는데, 소박

하면서도 적절한 묘사인 것 같다.

  오랜만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니 그저 고맙고 기쁘다.  뒷 숲

에서 소쩍새가 운다.  산은 한층 이슥해진다.  이런 때 나는 홀로

있음에 맑은 기쁨을 누린다.

  억지소리 같지만, 홀로이기 때문에 많은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

는 것이다.  어디 사람만이 이웃이랴.  청청한 나무들과 선한 새와

짐승들, 그리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맑은 바람과 저 아래 골

짝에서 울려오는 시냇물 소리가 정다운 내 이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웃들로 인해 살아가는 기쁨과 고마움을 누릴 때가 많다.

 

  물론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기쁨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몇 억

불의 수익으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이삼

백 장의 연탄을 들여놓고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

우체국 집배원으로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한 나라의 통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산골에 묻혀서 사는 덜된 사람들은 둘레의 지극히 사

소한 일들 속에서 삶의 잔잔한 기쁨을 찾는 수가 있다,  이를테면,

고무줄로 된 허리띠가 탄력을 잃고 느슨해져서 자꾸만 바지가 흘

러내리는 바람에 성가셔 하다가, 어느 날 새 허리띠로 갈아 낀 다

음의 그 든든함.  이것도 홀가분한 기쁨일 수 있다.

  부엌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그 소리에 신경이 곤두

서곤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떠올라 초 토막을 녹여서 돌쩌

귀에 바른 뒤부터는, 아무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여닫히는 걸 보고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 또한 내 조그

마한 기쁨이다.

  장마가 갠 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낫으로 베다가 풀섶에 가려

진 커다란 호박을 보았을 때, 그야말로 이거 웬 호박이냐는 경우

도 살아가는 기쁨이다.  산 너머에서 우르렁거리는 천둥소리를 듣

고 뜰에 나가 비설거지를 하고 나자, 금새 까맣게 휘몰아 오는 소

낙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생

기에 차서 너울거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일 또한 즐겁다.

  복더위가 극성을 떠는 요즘 점심 공양 끝에 한소끔씩 낮잠을

잔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있는 보원요의 김기철 님이 나를 위

해 만들어 준 도침陶枕을 베고 누워 있으면 맑은 솔바람 소리가 들

린다.  처음에는 딱딱해서 자꾸만 뒤척거렸는데, 길이 드니 시원

한 그 맛에 폭신한 베개가 도리어 답답해졌다.  처음 박물관에서

도자기로 된 베개를 보고 옛사람들의 생활의 운치를 기리면서 부

러워했는데, 시절 인연이 찾아와 조그만 그 소원이 내게도 이루

어졌다.  도침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씻은 듯이 맑다.  이 또한 조촐

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불일의 지붕에는 많은 새들이 나와 함께 산다.  7년 전 이

암자를 다시 지을 때 연함 때문에 속이 좀 상했었다.  연함이

란, 서까래 끝의 평교대 위에 기왓골을 받치기 위해 암키와가 놓

일 만하게 반달 모양으로 에어 낸 나무를 말한다.  이 연함을 두고

목수와 와공이 서로 자기 할 일이 아니라고 미루다가 결국 연장

을 가진 목수가 파게 되었는데. 목재를 잘못 골라 기와와 연함 사

이가 골마다 틈이 생겼다.  이 틈에 산새들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이

다.  주로 할미새와 박새가 산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군불을 지피러 부엌에 들어가려다가

새 새끼가 한 마리 땅에 떨어져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솜털이 보얀 박새 새끼였다.  새집에서 굴러 떨어졌거나 아니면

너무 서둘러 나는 연습을 하다가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안쓰러워

손으로 만지려고 하니 입을 벌려 짹짹거리면서 비실비실 피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느새 두 마리 어미새가 가까이 날아와 짹짹거

리면서 나를 경계했다.

  군불을 지피고 나서도 어린 새의 일에 마음이 쓰여 한쪽에 돌

아서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미 새가 이따금씩 날벌레를 물어와

새끼에게 먹이는데, 바로 먹이지 않고 몇 차례씩 입에 넣었다.  빼

었다 하면서 조금씩 나는 연습을 시켰다.  두 마리 새가 번갈아 가

면서 꼬박 이틀을 이렇게 하더니 마침내 비상, 새끼 새가 제 힘으

로 날아가게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나도 어깨를 활짝 펴고 숨

을 크게 쉴 수가 있었다.  새들의 지극한 모성애에 소리 없는 박수

를 보내 주었다.

 

  꾀꼬리, 뻐꾸기, 소쩍새, 밀화부리 같은 철새들이 제철에 이르

러 첫인사를 보내올 때, 그 설레는 반가움은 산에서 사는 사람만

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수첩에는 이런 일이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마다 5월 초에 꾀꼬리와 뻐꾸기는 하루 이틀 사

이를 두고 찾아온다.  그런데 금년에는 뻐꾸기가 한 주일이나 늦

게 오는 바람에 무슨 일인가 하고 몹시 궁금했다.  5월 11일, 차

밭에서 차를 따다가 뻐꾸기의 첫인사를 받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목청으로 밀화부리가 노래할 때 나는 곧

잘 휘파람으로 화답을 해준다.  꾀꼬리도 휘파람으로 소리해 주면

제 친구인가 해서 자꾸만 가까이 날아오면서 노래를 한다.  이 또

한 살아가는 기쁨이 아닌가.

 

  요즘에는 토끼가 대숲과 모란 밭 사이를 자주 뛰어다닌다.  토

끼를 보면 '옹달샘' 노래가 내 귓전에 아직도 들린다.  재작년 어느

여름날 아침, 큰절에서 수련 중인 순천여상 학생들이 올라와 아

침 이슬 같은 영롱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고 간 노래가 이 '옹달

샘' 이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그렇다.  이 노래처럼 샘으로 물 마시러 오는 토끼를 볼 때가 더

러 있다.  세수도 하는지 물만 먹고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무심한 짐승들과 같은 산속에서 산다는 것은 조촐한 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밖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처마 끝에 외등처럼 걸려 있다.

잠든 숲에 시냇물 소리만 깨어 있다.  밤 시냇물 소리, 그것은 쉬

지 않고 흐르는 세월의 소리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ㅡ 법정스님《맑고 향기롭게》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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