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예불을 마치고 앞마루로 나가다가 이제 막 떠오르는 열나
흘 달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가, 앞산 마루 위로
떠오르는 둥근 달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월광 보살을 뇌이면서
두 손을 마주 모았다. 여름날 해거름에 더욱 부드럽고 아련하게
보이는 앞산 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은 사뭇 환상적이다. 우리네
고적적인 표현에 달덩이 같이 예쁜 얼굴이란 말이 있는데, 소박
하면서도 적절한 묘사인 것 같다.
오랜만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니 그저 고맙고 기쁘다. 뒷 숲
에서 소쩍새가 운다. 산은 한층 이슥해진다. 이런 때 나는 홀로
있음에 맑은 기쁨을 누린다.
억지소리 같지만, 홀로이기 때문에 많은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
는 것이다. 어디 사람만이 이웃이랴. 청청한 나무들과 선한 새와
짐승들, 그리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맑은 바람과 저 아래 골
짝에서 울려오는 시냇물 소리가 정다운 내 이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웃들로 인해 살아가는 기쁨과 고마움을 누릴 때가 많다.
물론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기쁨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몇 억
불의 수익으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이삼
백 장의 연탄을 들여놓고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
우체국 집배원으로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한 나라의 통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산골에 묻혀서 사는 덜된 사람들은 둘레의 지극히 사
소한 일들 속에서 삶의 잔잔한 기쁨을 찾는 수가 있다, 이를테면,
고무줄로 된 허리띠가 탄력을 잃고 느슨해져서 자꾸만 바지가 흘
러내리는 바람에 성가셔 하다가, 어느 날 새 허리띠로 갈아 낀 다
음의 그 든든함. 이것도 홀가분한 기쁨일 수 있다.
부엌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그 소리에 신경이 곤두
서곤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떠올라 초 토막을 녹여서 돌쩌
귀에 바른 뒤부터는, 아무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여닫히는 걸 보고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 또한 내 조그
마한 기쁨이다.
장마가 갠 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낫으로 베다가 풀섶에 가려
진 커다란 호박을 보았을 때, 그야말로 이거 웬 호박이냐는 경우
도 살아가는 기쁨이다. 산 너머에서 우르렁거리는 천둥소리를 듣
고 뜰에 나가 비설거지를 하고 나자, 금새 까맣게 휘몰아 오는 소
낙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생
기에 차서 너울거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일 또한 즐겁다.
복더위가 극성을 떠는 요즘 점심 공양 끝에 한소끔씩 낮잠을
잔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있는 보원요의 김기철 님이 나를 위
해 만들어 준 도침陶枕을 베고 누워 있으면 맑은 솔바람 소리가 들
린다. 처음에는 딱딱해서 자꾸만 뒤척거렸는데, 길이 드니 시원
한 그 맛에 폭신한 베개가 도리어 답답해졌다. 처음 박물관에서
도자기로 된 베개를 보고 옛사람들의 생활의 운치를 기리면서 부
러워했는데, 시절 인연이 찾아와 조그만 그 소원이 내게도 이루
어졌다. 도침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씻은 듯이 맑다. 이 또한 조촐
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불일의 지붕에는 많은 새들이 나와 함께 산다. 7년 전 이
암자를 다시 지을 때 연함 때문에 속이 좀 상했었다. 연함이
란, 서까래 끝의 평교대 위에 기왓골을 받치기 위해 암키와가 놓
일 만하게 반달 모양으로 에어 낸 나무를 말한다. 이 연함을 두고
목수와 와공이 서로 자기 할 일이 아니라고 미루다가 결국 연장
을 가진 목수가 파게 되었는데. 목재를 잘못 골라 기와와 연함 사
이가 골마다 틈이 생겼다. 이 틈에 산새들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이
다. 주로 할미새와 박새가 산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군불을 지피러 부엌에 들어가려다가
새 새끼가 한 마리 땅에 떨어져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솜털이 보얀 박새 새끼였다. 새집에서 굴러 떨어졌거나 아니면
너무 서둘러 나는 연습을 하다가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안쓰러워
손으로 만지려고 하니 입을 벌려 짹짹거리면서 비실비실 피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느새 두 마리 어미새가 가까이 날아와 짹짹거
리면서 나를 경계했다.
군불을 지피고 나서도 어린 새의 일에 마음이 쓰여 한쪽에 돌
아서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미 새가 이따금씩 날벌레를 물어와
새끼에게 먹이는데, 바로 먹이지 않고 몇 차례씩 입에 넣었다. 빼
었다 하면서 조금씩 나는 연습을 시켰다. 두 마리 새가 번갈아 가
면서 꼬박 이틀을 이렇게 하더니 마침내 비상, 새끼 새가 제 힘으
로 날아가게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나도 어깨를 활짝 펴고 숨
을 크게 쉴 수가 있었다. 새들의 지극한 모성애에 소리 없는 박수
를 보내 주었다.
꾀꼬리, 뻐꾸기, 소쩍새, 밀화부리 같은 철새들이 제철에 이르
러 첫인사를 보내올 때, 그 설레는 반가움은 산에서 사는 사람만
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수첩에는 이런 일이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마다 5월 초에 꾀꼬리와 뻐꾸기는 하루 이틀 사
이를 두고 찾아온다. 그런데 금년에는 뻐꾸기가 한 주일이나 늦
게 오는 바람에 무슨 일인가 하고 몹시 궁금했다. 5월 11일, 차
밭에서 차를 따다가 뻐꾸기의 첫인사를 받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목청으로 밀화부리가 노래할 때 나는 곧
잘 휘파람으로 화답을 해준다. 꾀꼬리도 휘파람으로 소리해 주면
제 친구인가 해서 자꾸만 가까이 날아오면서 노래를 한다. 이 또
한 살아가는 기쁨이 아닌가.
요즘에는 토끼가 대숲과 모란 밭 사이를 자주 뛰어다닌다. 토
끼를 보면 '옹달샘' 노래가 내 귓전에 아직도 들린다. 재작년 어느
여름날 아침, 큰절에서 수련 중인 순천여상 학생들이 올라와 아
침 이슬 같은 영롱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고 간 노래가 이 '옹달
샘' 이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그렇다. 이 노래처럼 샘으로 물 마시러 오는 토끼를 볼 때가 더
러 있다. 세수도 하는지 물만 먹고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무심한 짐승들과 같은 산속에서 산다는 것은 조촐한 복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밖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처마 끝에 외등처럼 걸려 있다.
잠든 숲에 시냇물 소리만 깨어 있다. 밤 시냇물 소리, 그것은 쉬
지 않고 흐르는 세월의 소리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ㅡ 법정스님《맑고 향기롭게》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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