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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설계도가 완성되는 순간/ 반기문

해탈의향기 2013. 4. 7. 14:02

 

                                                                                      

                                                   충주 악어섬

 

                                          

 

  1962년 고 3 여름방학 때 떠난 비스타 프로그램은 한달간 진행되었다.  미국 청소년적십자단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관광, 미국인 가정에서의 홈스테이, 예술제, 봉사, 연수 등의 일정으로 43개국 117명의 대표 학생들이 참여했다.  기문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미국,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 같은 선진국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칠레나 유고슬라비아, 파나마 같은 작은 나라의 학생들도 만날 수 있었다.  기문은 패더슨이라는 중학교 교장선생님의 집과, 농장주인 존 바레트의 집에서 얼마간 지냈다.  미국인 가정에서 그들의 식구가 되어 지내면서 보니 미국인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즐겁게 살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안정이 된 상황도 있었지만, 그들의 여유 있는 생활과 밝은 표정을 보니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게다가 동양에서와는 달리 어린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기문은 그것에 대해선 아주 좋게만 생각이 들진 않았다.  너무 자유를 줘 방종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문은 각국 학생들은 물론이고 미국인들이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어 너무 놀랐다. 

"Where is Korea?"  "Is there any University in your country?"  라는 무식한 질문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기문은 한국 대표로서 한국에 대해 알리려고 노력했다.  아는 단어를 총동원하고 몸짓을 써가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설명하면서 문득 '그래' 이게 바로 외교관의 일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 미국 생활, 봉사 활동도 뜻 깊은 경험이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던 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백악관 견학을 하는 내내 기문은 잠시 후에 케네디 대통령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되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견학을 마치고 앉아 있으니 케네디 대통령이 등장했다. 케네디 대

통령은 가까이서 보니 그다지 큰 체격은 아니었지만 뿜어 나오는 에너지가 꽤나 웅장하다는 그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2∼3분간 짧게 연설을 했다.  기문은 케네디 대통령의 아우라에 취해 연설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미국에 온 것을 환영하며 적십자의 정신으로 각 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 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케네디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곤 연단 앞으로 나와 학생들 몇몇과 악수를 했다.  기문은 케테디 대통령과 악수를 한 번 하려고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레이디 퍼스트' 였으니 악수하기 좋은 앞자리는 여학생들 차지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싱거운 노력이었다.  그래도 케네디 대통령에게 기문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훤칠한 키에 다소 싱거워 보이는 인상을 한 소년에게 케네디 대통령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기문은 망설임도 없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외교관입니다."

  기문의 대답을 듣고 케네디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를 떳다.  기문은 그 대답을 하는 순간 무언가 선명하고 명확하게 그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래, 내 꿈은 외교관이야' 라며 다시 속으로 되뇌었다.  김성태 선생님께서 '외교관이 되라' 고 말씀하셨을 때는 촌티를 내며 '지가 워째 그런대유?' 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제 꿈은 외교관입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무엇이 될줄도 모르고 하나하나 성실히 엮어만 가던 씨줄과 날줄

이 확실한 모양새를 드러낸 것이다. 비로소 19세기 반기문에게 꿈의 설계도가 제대로 그려지는 날이었다.

 

   ㅡ 신웅진《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중에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