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살기 / 장영희
오래전 동생들이 내게 붙여 준 별명은 '삼치'이다. 여기서 '삼치'는 먹는 생선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한자어로 '석 삼三'에 '백치 치痴', 즉 '세 분야에 관한 한 완벽한 백치'라는 말이다.
첫째 나는 동서남북을 가늠 못하고 헤매는 방향치이고, 둘째 요즘처럼 멀티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버거운 기계치이고, 셋째 숫자라면 거의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수치이다.
흔히 사람들은 목발을 짚고 천천히 걸어다니는 나를 안타까워하며 "얼마나 불편하고 힘드냐?"라고 위로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의 '삼치'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목발을 짚고 다녀 기동력이 좀 떨어져도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해 줄 뿐 아니라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장애이지만, 나의 '삼치'는 상식을 벗어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방향치로 말하면, 한 번은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데모하는 바람에 뒷문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어 보통 때 같으면 15분 걸리는 집을 두 시간쯤 헤매다가 급기야는 차를 버리고 택시를 타고 온 적이 있고, 기계치(내가 여기서 '기계'라 함은 컴퓨터와 같이 크고 복잡한 물건뿐만 아니라 연필깎이나 깡통 따개와 같은 '간단'한 기구까지 포함한다.) 경향으로 말하자면 자동차 안전벨트 매는 것부터 CD플레이어 켜는 일에도 모든 저력을 동원해야 하고, 또한 수치로 따지자면 내 휴대폰 번호나 주민등록 번호도 기억을 못 해 항상 조교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르치고 점수 매기는 일 외에 모든 생활을 조교들에게 의지하고 있다.
올해 새로 들어온 조교는 내게 무엇을 설명해 줄 때마다 "선생님, 이거 아주 쉬워요. 원숭이도 한 시간만 배우면 다 할 거예요"라고 내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가 싶더니 얼마 전부터는 그 말이 쑥 들어갔다. 원숭이도 한 시간이면 배울 것을 자기 선생은 하루가 가도 못 깨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생으로서의 체면을 찾는 것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삼치로서 또 하나 기막히게 불편한 것은 내게 익숙지 않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다. 기계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가장 민감한 변화를 보이는 것이 화장실의 잠금 장치이다. 때문에 호텔이나 고속 도로변의 휴게소와 같이 처음 가보는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들어가서 어떻게 잠그기는 잠갔는데, 나올 때 열지를 못해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삼치'외에도 나는 심각한 건망 증세로 무엇이든 잘 잊거나 잃어버려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데 소비한다. 오늘만 해도 중요한 전화를 받을 일이 있어 학교에 휴대폰을 가져간다는 것이 무심코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핸드백에 넣고 가는 바람에 온종일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렸다.
'삼치'만 가지고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 거기다 더해 요즘에는 급기야 '사치'로 한 단계 승진(?)할 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눈치'가 없기로 꽤 소문이 나서 가끔 집에서 '둔치'(둔한 눈치)로 불린다. 눈치의 어원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상황 판단을 하는 순발력이나 통찰력을 말한다면, 나는 사실 최악의 '둔치'이다. 이것이 요즘들어 더 심해진 듯하다.
그런데 '삼치'의 경우에는 그저 나만 사는 게 고달프고 불편하면 되지만, 눈치가 없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진 '치'가운데 제일 민망한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심히 생각나는 대로 말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당연히 알아채는 상황도 나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판단을 하거나 그릇된 결정을 하기 일쑤니 말이다. 게다가 이 '둔치' 증상은 무엇이든 내게 익숙지 않은 새로운 것을 이해하거나 배울 때 크나큰 걸림돌이 된다.
한 예로 지난번에는 가족들이 모였는데 동생 남편이 자기가 가르쳐 줄테니 식구 모두 '모노폴리'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에야말로 '둔치'라는 오명을 벗을 기회다 싶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열심히 생각하고, 외우고, 분석하고, 관찰하고 난 다음에야 겨우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내가 드디어 해 보겠다고 나설 즈음엔 이미 모두들 싫증이 나서 그만두려는 참이었다.
실망하는 나를 보시고 어머니가 "너는 뭐든지 늦게 배우지만 한 번 배우면 확실하게 하는데, 두고 봐라, 조금만 연습하면 네가 제일 잘할걸"하며 위로하셨다.
"늦게 배우지만 한 번 배우면 확실하게 한다." 물론 어머니로서는 무능한 딸을 위로하고자 하신 말씀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삼치'와 '둔치'이면서도 그래도 그나마 이제껏 큰 과오 없이 살아온 것은 시간이 걸려도 열심히 끝까지 배우고자 하는 근성, 아무리 못하고 모자라도 실망하지 않고 연습하고 또 연습한 인내심 덕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하면 이길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고 구경만 하던 게임 판을 물러서는데, 1등을 해서 돈을 딴 동생이 한마디했다.
"재밌네! 모노폴리 게임이라면, 그리고 같은 삶을 두 번 살 수 있다면......한 번은 연습으로, 그리고 다음 번은 진짜로, 워낙 눈치 없고 배우는 게 늦으니 첫 번째 삶은 실수투성이겠지만, 두 번째 삶을 살 때는 첫 번째의 경험을 토대로 더욱 여유롭고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비단 나뿐만 아니라 삶에 관한 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둔치'인지도 모른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남에게 상처 주고 상처입고, 잘못 판단하여 너무 늦게 깨닫고, 넘어지고 좌절하고, 살아가면서 겨우겨우 조금씩 터득해 가는 둔치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을 신은 모르시는 것이 아닌지-인간들은 무엇이든 경험으로 제일 잘 터득하고, '어떻게 사는가'를 배우는 방법은 실제로 시행착오를 하면서 살아 봄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생이 항해이고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두 번 여행할 수 있다면, 처음 여행 때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떠돌아다니면서 방향 잡는 법이나 아슬아슬하게 빙산 사이를 빠져나가는 운전 기술을 습득해야 두 번째 삶에서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방향타를 잡고 멋지게 항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말하면 무엇하나, 어차피 삶은 한 번뿐이고, 연습은 없는 것을. 오늘도 나는 '삼치'로 이리 헤매고 저리 넘어지지만, 내 생애 단 한 번 오는 2000년이라는 숫자는 너무 가슴 벅차고, 넘어지면서 보아도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는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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