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고양 원더스 감독 김성근

해탈의향기 2013. 4. 21. 07:33

 

 

 

 

 

 

                          잔재주 부리는 놈이 이기는 사회는 바뀌어야

 

 

조국      프로구단에 계시다가 독립 야구단을 맡으신 각오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이곳에 오신 후 선수 5명을 프로팀에 보내셨는데요.  자서전 제목인 "꼴찌를 일등으로"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김성근   '어차피', '혹시', '반드시' 이 세 단어를 어디에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어차피'는 스스로 포기하는 거예요.  '혹시'는 1∼2%의 희망을 좇는 것이죠.  나는 '어차피', '혹시'를 '반드시'로 바꾸려고 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걸 계발하는 게 나의 임무입니다. 

조국      '패자부활전' 없는 한국사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성근   우리나라는 재벌사회, 금권지배사회 아닙니까.  돈 있는 사람이 말하면 통하고, 돈 없는 사람이 말하면 통하지 않는 사회예요.  혹시나 피해 볼까 봐 말도 잘 못나는 나라입니다.  굉장히 슬프죠.

조국      박현준, 김성현의 경기조작 사건을 지켜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김성근   두 선수가 돈이 뭔지 몰랐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정당하게 벌지 않은 돈은 사람을 망치는 법인데 ··· 너무 슬픕니다.  1958년 한국에 처음 온 이후 신문에 하루라도 부정부패 기사 안 나오는 날이 없었어요.  잔재주 부리는 놈이 이기는 사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이들 눈은 파닥파닥 살아 있어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살아야 하는 사회는 변함이 없어요.  돈,돈, 돈타령만 하고.

조국      야구선수 중 상당수는 야구만 하다 보니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

김성근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  순간을 귀중하게 생각하라, 그러면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복 입었을 때는 어디에 있든 운동선수 표시 나지 않게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운동선수는 야구장 밖에서 으스대지 말아야 해요. 

                                       

 

 

 

조국      사실 저는 고 최동원 선수 시절부터 '거인' 열혈팬입니다.  아드님 김정준 씨 책에 따르면 감독님은 "거인에게는 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있었다는데··· 로이스터 감독과 경쟁심을 느끼는 것 같다는 아드님의 관찰이 있었습니다.

김성근   (아들 책) 안 읽어봤어요.  (웃음) 2008년 시즌 전 미디어데이 때 롯데 정수근이 했던 "연습만 하는 팀한테는 지기 싫다"는 말이 발단이 됐어요.  로이스터에게 한국 야구가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도 싶었고.  일본 가서도, 아시아 시리즈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국      감독님의 '일구이무(一球二無)' 정신은 로이스터 감독의 '노피어(No Fear)'와 차이가 있다고 아드님은 말했습니다.

김성근   일구이무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강은 흘러가지만 내 앞에 흐르는 물이 똑같은 적은 없어요.  야구도 똑같은 상황이 한 번도 없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리고 '일구이무' 정신은 어떤 행동을 하건 근거를 요구합니다.  예를 들어 초구부터 친다고 마음먹는다면 그 근거가 있어야 해요.  한편 공 하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로이스터의 '노피어'는 한번 놓쳤다고 하더라도 연연하지 말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측면을 말한 것뿐, 큰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조국      야구인 사이에서는 김 감독님에 대한 호불호가 갈립니다.  '재미있는 야구'를 하지 않고 악착같이 '이기는 야구'만 한다는 비난이 있는데···.

김성근   (목소리를 높이며) '재미있는 야구' 한 감독 중 남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어요.  승부가 무서운 줄 모르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죠.  8대0으로 이길 때는 8대0으로 끝내야 합니다.  점수를 내줘서8대7로 이기면 투수를 많이 써야 하잖아요.  전력 소모 없이 이겨야 해요.  시즌 전에 스프링 캠프에서 '정규리그 133경기 중 70승 또는 80승 한다'고 선수들한테 선언합니다.  1승,1승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4∼5점 리드할 때 경기가 가장 힘듭니다.  차라리 박빙인 크로스게임이 나아요.  표현이 뭣하지만 '확인사살'도 해서 상대팀을 두렵게 만들어야 합니다.  확실하고 확고하게 이겨야 해요.  반대로 지고 있을 때는 악착같이 쫓아가야 하고요.  그래서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상대 전력을 소모시켜야 합니다.  SK처럼 원래 약했던 팀이 강팀이 되면 더 아니꼽죠.  원래부터 강한 팀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거예요.

조국      야구를 목숨 건 '전쟁'으로 보는 '전사'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근래는 감독님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생각이 바뀐 것 같습니다.

김성근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면서도 이기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으니까요.  예전에는 '자율야구'가 아마추어 야구까지 판을 쳤어요.  한국 야구 망하겠다 싶었죠.  쌍방울 레이더스에 가서 혹독히 연습 시켰습니다.  그 전 해까지 LG 트윈스와 5승 14패였는데, 내가 간뒤 14승 5패로 바꿔놓았어요.  연습량이 많고 노력하면 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 거죠.  당시 나는 '천 원짜리 야구'라는 말을 썼어요.  '천 원'밖에 없으면서 호화멤버 해태나 두산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기용방법과 전략전술이 달라져야 했습니다.  팬은 물론 야구해설자도 이해 못했죠.  하지만 집안 사정은 아버지, 엄마가 제일 잘 압니다.  내가 맡고 있는 팀은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어느 순간 욕하던 사람들이 바뀌더군요.  요즘 LG 김기태 감독의 야구를 잘 보세요.  선발이 없어요.  쌍방울 야구죠.

조국      프로야구 감독을 6번 맡아서 6번 경질됐습니다.  SK에서 경질됐을 때 '졸부'에 맞서는 '장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거인팬이지만 모욕감을 느낄 정도였죠.  우승이 필요하니 김 감독님을 잡았고, 우승하고 나니 감독님이 부담이 된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성근   구단에서 처음에는 나를 좋아했어요.  돈도 많이 안 쓰고 승리하니까.  나는 FA 한 명도 안 잡았어요.  FA 한 명 데려오려면 40억, 50억이에요.  나는 전부 어디서 잘린 선수, 2군 선수를 데리고 와서 좋은 선수로 만들어놨습니다.  한계에 달한 김재현도 4년 연장시켰고, 박경완은 아직도 뜁니다.  돈으로 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약한 전력으로 이긴 거죠.  SK 5년 동안 4월 성적이 81승 28패 5무, 7할 4푼 4리예요.  남들 노는 12월, 1월에 연습한 결과입니다.  2010년 성적은 21승 5패입니다.  플러스 16승이에요.  2008년은 19승 5패, 플러스 14죠.  다 없는 전력으로 이긴 겁니다.

조국      그런데 왜 틀어졌나요?

김성근   구단 사장에게는 출세가 우선이에요.  돈 안 쓰고 성적 올리면 성과는 자기 것이 됩니다.  선수들이 고생해서 만든 것인데···  승부의 세계에서 어려운 것은 정상에 오르는 것,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정상을 유지하는 것, 가장 어려운 것은 정상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이에요.  SK에서는 선수들과 힘을 합쳐 세 가지 어려운 일을 다 이루었어요.  그런데 사장은 재미없는 야구를 했다고 싫어했죠.  김성근이 회사에 나쁜 이미지 만든다고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현장을 무시한 처사죠.  거기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힘든데··· 부상 선수 많고 전력 보강 없이 군대 보내고,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처음 하는 얘기인데, 우승 후 선수단에 200만 원씩 상품권을 줬어요.  우승여행을 가족 놔두고 선수만 가라는 겁니까.  그러니 선수들이 안 가겠다고 했죠.  선수단 모두가 인격적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어요.  나도 열받았고.  그리고 선수들 치료비를 사장에게 보고하지않고 내가 직결한 게 있어요.  정대현, 이호준 등을 일본에 보내 치료하는 비용으로 총 1억 원 정도 썼을 겁니다,  사장이 싫어했던 모양이에요.  SK에서 내 개인적으로 돈 쓴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을 위해서는 요구했어요.  2007∼08년 우승 이후 간부회의에서 나를 자르려고 했어요.  원래 높은 곳에 있으면 바람이 많은 법 아닙니까.

조국      부자 구단 SK 와이번스 이전에 가난한 구단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감독을 하셨죠.

김성근   처음 시작은 똑같아요. '왜 계약했지, 잘못했다'로 시작하죠. (웃음) 레이더스는 선수가 없었고, 키운 아이들도 분발하지 않았어요.  구단 지원은 생각하지도 못할 상태였고.  다른 팀에서 200억쓸 때, 쌍방울에선 50억 가지고 했어요.  캠프 가면 돈이 모자라 이것저것 내가 깎았죠.  다른 팀이 무궁화 5개 호텔에서 잘때, 우리는 앞방 옆방 소리 다 들리는 곳에서 잤습니다.  팀 구성원 모두가 결핍과 싸우며 운동을 했지만, 불만 없었어요.  당시에는 현대가 선망의 부자 구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와의 경기에서는 내가 일부러 심판과 거칠게 싸웠어요.  현대와의 경기에서 제일 많이 퇴장당했고.  선수들이 부자 구단에게 기죽지 말라고 의도적으로 싸운 겁니다.  그 결과, 현대와 쌍방울 선수의 급 차이는 매우 컸는데 승패 차이는 별로 없었어요.  감독으로 깨침이 있었던 때가 바로 이 시절이었죠.  '없는 살림'으로 경기를 치러야 하니까 상대가 보이더군요.

 

  ㅡ 조국《조국의 만남》중에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