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법구경해설/ 석지현

해탈의향기 2013. 6. 1. 10:15

 

 

 

  불멸의 언어 법구경 

 

  1965년 김달진 선생의 법구경 번역이 최초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이후 30년 가까이 여러 종에 달하는 법구경이 출판되었는데 불교에 관심 있는 웬만한 독자라면 법구경의 시구들을 읽고 감동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필자도 그 당시 법구경 애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법구경은 저 깨달음을 향하는 부지런히 나아가라는 부처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시구집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즌 인간사회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스스로 던져주고 있다.

 

  법구경은 인도에서 성립되었지만 이미 인도를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종교와 아무런 관계 없이도 법구경은 인도인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더 나아가 동양과 유럽의 여러 나라로 퍼져 가면서 가는 곳마다 그들의 정서와 융화되어 가슴의 언어가 되었고 영혼의 노래가 되었다.

 

 

  법구경의 경명(經名) 

 

  팔리(pali)어로 된《법구경(法句經)》의 원래 이름은《담마파다(Dhammapada)》이다. '담마(Dhamma)'는

진리, 불멸(不滅)을 뜻하며, '파다(Pada)'는 언어, 말, 길을 뜻한다.  그러므로 '담마파다'는 '진리의 언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팔리 원명에는 '경(經, Sutta = Sutra)'이라는 글자가 없다.  그런데 《담마파다》를 번역할 때 중국인들은 그들의 기호에 알맞게 '경(經)'자를 붙여서 《법구경(法句經)》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법구경의 원어인 팔리어란 어떤 언어인가.  팔리어란, 부처님 당시 인도 갠지스강 부근의 중류 지방에 있던 마가다국(지금의 비하르 주)의 언어로서 주로 평민들이 사용하던 구어체의 언어이다.  부처님은 40여 년간을로 이곳 마가다국에 머물면서 팔리어로 설법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전 26장 423편의 시구로 되어 있는 이 법구경은 초기경전(원시경전)의 묶음인 5니카야 가운데 제5 소부경전(小部經典, Khuddakapatha)의 제2번째에 해당한다.

 

 

  법구경의 구성과 내용 

 

  법구경은 《우다나(Udana,無問白說經)》, 《숫타니파타(Suttanipata, 經集)》와 함께 가장 오래된 불교경전으로서 예부터 불교도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읽혀지던 경전이다.  그리고 동시에 법구경은 불교경전, 자이나교경전, 인도의 옛 문헌 등에서 명언적인 시구들만을 뽑아 한 권의 경전으로 묶은 것이다.  이 법구경의 편집자는 달마 트라타(Dharmatrata, 法救)로서 B.C. 2세기경에 살았던 인물이다.  여기 전 26장의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오늘 

  제1장은 인간의 행동규범에 관한 내용이다.  문장의 구조로 본다면 '···하면'의 긍정문과 '···하지 않으면'의 부정문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제1장을 긍정과 부정이 서로 대치되는 장 이라고 한다.

 

  제2장. 깨어 있음 

  제2장은 근면에 대한 찬양이다.  절제된 생활(Appamada)과 무절제한 생활(ppamada)을 비교해 가면서 전자를 찬양하고 후자를 비판하는 식으로 시구가 전개되고 있다.

 

  제3장. 마음 

  제 3장은 마음에 관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노래한 시구이다.

 

  제4장. 꽃 

  제4장은 들꽃의 비유를 들어, 격조 높은 불멸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제5장. 어리석은 이 

  제5장은 어리석음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다.  '어리석은 이와 같이 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니 외롭더라도 차라리 홀로 가라'는 간절한 가르침이 이 장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

 

  제6장. 현명한 이 

  제6장은 지혜로운 현자에 대한 찬양으로서 앞의 제5장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제7장. 새벽의 사람 

  제7장은 거룩한 성자, 아라한에 대한 찬양이다.

 

  제8장. 천보다도 백보다도 

  제8장의 모든 시구는 백(百), 또는 천(千)이라는 숫자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천 가지의 장'이라고 한 것이다.  이 경전을 편집할 당시 천이나 백의 숫자로 시작되는 시구절들을 한데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제9장. 마라 

  제9장은 권선징악의 도덕률을 노래한 시구들이다.

 

  제10장. 폭력 

  제10장은 폭력에 대한 비판이다.  한역(漢譯)에서 이 장을 도장품(刀杖品)이라고 한 것은 옛날 죄인을 벌줄 때 칼이나 몽둥이(刀杖)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제11장. 늙어감 

  제11장은 젊은 시절에 마음닦기를 게을리 하게 되면 늙어서 비참해진다는 식의 감상조가 가을바람처럼 시구의 전편에 흐르고 있다,

 

  제12장. 자기 자신 

  제12장은 나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시구이다.

 

  제13장. 이 세상 

  제13장은 덧없는 이 세속의 꿈에서 깨어나 저 불멸의 길을 가라는 가르침이다.

 

  제14장. 깨달은 이 

  제14장은 깨달은 이, 부처님에 대한 찬양이다.

 

  제15장. 행복 

  제15장은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시구이다.

 

  제16장. 쾌락 

  제16장은 사랑이 주는 쾌락보다는 그쾌락 뒤에 오는 고통이 더 심하기 때문에 이를 깨닫고 쾌락의 길을 아예 가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 시구의 흐름이 아주 간절하기 이를 데 없다.

 

 제17장. 분노 

  제17장은 분노에 대한 가르침이다.  분노가 그  제어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고삐풀린 말과 같아서 걷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삐가 풀리기 전에 분노라는 미친 말(馬)을 잘 다스리라는 가르침이다.

 

  제18장. 더러움 

  제18장은 죽음의 공포와 무지에 대한 노래이다.  이 장에서 특이한 점은 '무지(無知)'를 가장 추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제19장. 올바름 

  제19장은 정의에 대한 설명이다.  무엇이 정의인가,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나이 드신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가··· 등등에 관한 시구이다.

 

  제20장. 진리의 길 

  제20장은 불교사상의 핵심인 세 가지진리(三法印)와 네 가지 진리(사성제) 등에 대한 시구이다.

 

  제21장. 여러 가지  

  제21장은 일관된 흐름이 없고 다양한 시구들을 한데 묶어 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이 장을 '여러 가지의 장' 이라한 것이다.

 

  제22장. 어둠 

  제22장은 저 어둠의 심장인 지옥에 관한 시구이다.

 

  제23장. 코끼리 

  제23장은 화살을 맞고도 그 고통을 참고 견디는 코끼리처럼 구도자는 온갖 고난과 고독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제24장. 욕망  

  제24장은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는 욕망의 흐름을 지혜롭게 다스려가라는 가르침이다.

 

  제25장. 수행자  

  제25장은 수행자에 관한 시구이다.  진정한 수행자(比丘)란 누구인가.  그리고 진정한 수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가르침이다.

 

  제26장. 브라만  

  제26장은 법구경의 마지막 장이다.  '브라만(Brahmana)'이란 힌두교의 성직자, 즉 힌두사제를 일컫는 말이다.  힌두사제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전통적으로 엄격한 혈통과 가문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 오랜 전통에 과감히 도전했다.  "브라만의 자격은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행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불교의 이같은 주장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는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여기 그 충격의 핵폭발로 법구경의 마지막 장은 끝나고 있는 것이다.

 

 

  법구경의 번역과 주석

  법구경의 번역은 맨 먼저 중국에서 시도되었는데 A.D. 224년에서 A. D. 980년 사이 네 번에 걸쳐 한역되었다.  이 한역본들은 김달진(1965) 선생에 의해서 최초로 우리나라에 번역되었는데 가장 뛰어난 번역임과 동시에 널리 읽혀지고 있는 명역(名譯)이다.  또한 법구경은 서양의 언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불교경전이다.  그리고 동시에 서구 지식인들 사이에서 반드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교양필독서'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간으로서, 구도자로서 이 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삶의 지침서'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1855년 덴마크의 불교학자 파우스뵐(V. Fausboll)에 의해서 라틴어 역 법구경이 최초로 출간, 대대적인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파우스뵐은 코펜하겐대학 도서관에서 사서 일을 맡고 있던 무명의 젊은이에 불과했다.  파우스뵐의 라틴어 역본에 뒤이어 1860년 웨버(Weber)에 의해서 독일어 역본이 출간되었고, 그로부터 21년 후인 1881년 막스 뮬러(Max Muller)의 영역본이 출간되었다.  막스 뮬러의 영역본은 명역(名譯)으로서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기본 텍스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1914년에는 새로운 PTS본으로 팔리원본을 곁들인 수망갈라본(Suriyagoda Sumangala)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또 1950년에는 인도 철학자이자 인도 대통령을 역임한 라다 크리슈난(Radhakrishnan)의 영역본이 출간되었다.

 

  이밖에도 10회 이상의 영역과 독일어역, 2회 이상의 프랑스어 역과 러시아어역, 그리고 스페인어 역과 이태리어 역본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1906《남북대조영한화역 법구경(南北對照英漢和譯 法句經)》이 출간되었다.  이를 시초로 하여 일본에서도 많은 번역서와 주석서가 나왔는데 그 가운데 니까무라 하지메 박사의 일역본(中村元譯本 1978)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었다(1984년, 法頂譯).  법구경의 주석서에는 A.D. 5세기경 붓다고사(Buddhaghosa, 佛音)에 의해서 저술된《법구의석(法句義釋, Dhammapadatthakatta)》이 있는데 팔리원전과 이 주석서를 묶은 법구경 원전 번역이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다(거해역, 1992년). 역자는 미얀마(버마)에 서 위빠사나 명상수행을 한 경험이 있는데 이 법구경의 특징은 번역이 아주 진지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팔리원어와 발음등이 너무 번잡하게 나오고 있어 간단 명료한 원문의 뜻을 오히려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이외에도 김어수(金魚水, 1979) 역, 이원섭(李元燮, 1988) 역을 비롯하여 10여 종 이상의 법구경 번역서가 우리나라에서 잇달아 출간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우리말 번역서가 나왔는데 필자는 왜 굳이 또 법구경 번역에 손을 댔는가.  여기에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존의 법구경 번역서들은 주로 한역본(漢譯本)을 저본으로 했기 때문에 이 삶과 연결된 원전시구의 미세한 느낌들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문은 포괄적이며 응축된 상징어로서는 적합하지만, 감정의 미세한 흐름을 서술하기에는 적당치 못한 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역본을 근거로 번역하게 되면 생생하게 피부에 와닿는 법구경의 언어가 자연히 반추상화되어 버린다.  살아 있는 가슴의 언어가, 가슴이 아닌 머리로 와닿게 되면 어찌되는가.  그것은 이미 스승(부처님)의 살아 있는 언어가 아니라 지극히 훈고학적인 고전으로 경직화 되어 버리고 만다.

  둘째, 일본어 역의 경우는 그 언어의 선택이 부정적이며 종파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역본(日譯本)을 저본으로 한 번역은 자연히 소극적이고 설교적일 수밖에 없다. 

  셋째, 최근 법구경 원전 연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팔리어 원전에서 직접 우리말로 번역된 법구경 번역이 진지하게 시도되었다.  그러나 원어 한 글자 한 글자를 그대로 옮기는 식의 답답한 축자역(逐字譯)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팔리어와 우리말은 그 언어 표현이나 구조가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말을 팔리어 구조에 맞춰가며 번역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 번역에 무리가 따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번역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이 전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옮겨짐으로 하여 자연히 현학적인 번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법구경은 언어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히 살아 있는 언어다.  그러므로 우리말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정확성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정확성을 기하려는 의도가 지나쳐 버리게 되면 시구마다 넘치고 있는 생동감이 죽어 버리고 만다.  법구경은 423편의 시로 되어 있다.  시란 무엇인가.  언어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느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어 속에 담겨 있는 관념이 아니라 언어와 언어 사이의 침묵공간에서 흐르고 있는 일종의 전류(電流)와도 같은 것이다.  법구경 언어의 이 느낌들을 팔리어에서 우리말로 옮겨오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단순히 언어 속의 설명적인 관념들만 옮겨온다면, 그 번역은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앞의 이 세 가지 문제점, 즉 첫째 한역에서 살릴 수 없는 미세한 느낌들을 되살리고, 둘째 일역본의 왜소한 종파주의에서 벗어나고, 셋째 팔리어 원전 번역의 현학적인 축자역(逐字譯)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뜻에서 필자는 감히 이 법구경 번역에 손을 댄 것이다.  여기에는 또 민족사 윤창화 사장님의 지속적인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번역 과정에서는 수망갈라의 팔리원전 이외에 나라다의 영역본, 막스 뮬러의 영역본, 후앙 마스카로의 영역본, 라다크리슈난의 영역본, 그리고 나까무라 하지메의 일역본(1984년 증보판) 등을 참고했다.  작업 과정에서 자꾸 중복되는 언어는 대담하게 잘라 버렸으며, 우리말로 옮겨오기에 생경한 부분들은 그 뜻이 크게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두 우리말화 해 버렸다.

 

  무엇보다더 필자는 우선적으로 시구 하나하나 속에 담겨 있는 그 시적인 영감을 옮겨오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필자의 번역이 결코 완벽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면 필자에게도 필자 나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필자가 시를 공부했다는 것과 인도여행의 경험이 있고, 언어에 대한 감각이 약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눈밝은 이가 본다면 필자의 이 지껄이는 소리는 정말 가관일 것이다.  여기 많이 꾸짖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뒤에 오는 이들은 필자의 이 미숙한 번역에 가차없이 비판의 활인검(活人劍)을 휘둘러 주기 바란다.

 

  그리고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구마다 뒤에 간략한 뜻풀이를 곁들였다.  그런데 이 뜻풀이가 때로는 비판적이며 때로는 반어적이기도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비판적이며 반어적인 그 시각을 통하여 원 시구의 뜻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읽는 이는 특히 이 점을 유의하기 바란다.

 

   석지현 옮김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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