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세계적인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노벨 문학상은 노벨상의 여러 분야 중 단연 독보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에게 첫 번째 상이 수여된 이래 100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수상자 추측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노벨 문학상은 발표 직전까지 모든 과정이 비밀에 부쳐지는 교황 선출 방식과 비슷해서 그 결과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올해도 수상자를 둘러싼 갖가지 추측들이 흘러나왔고, “그 동안 소외되었던 미국과 아시아권 작가가 수상할 가능성도 대륙 안배 차원에서 매우 높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수많은 추측을 뒤로 하고 2011년 노벨 문학상에 선정된 사람은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 스톡홀름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압축되고 반투명한 이미지를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며 “그는 역사와 기억, 자연, 죽음 같은 중대한 질문에 대해 집필해왔다. 그의 시는 경제성과 구체성, 그리고 신랄한 비유로 특징 지을 수 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0일 열리고, 수상자인 트란스트뢰메르에게는 상금으로 1천만 크로네(약 17억 원)가 지급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상’이라는 명칭을 지닌 노벨 문학상은 늘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노벨 문학상 수상은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도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현재는 노벨 문학상에서의 서구의 강세가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계속해서 아시아권 작가와 한국의 문인들이 후보로 선정되고 있어 가까운 미래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이에 강력한 후보를 제치고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세계와 함께 올해 후보로 거론된 한국의 시인 고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함께 알아보려 한다. 두 작가 모두 ‘시인’이라는 점에서 문학 안에서 ‘시’가 가지는 역할과 함께 시의 깊은 맛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한국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한 초석의 의미 또한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세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반신마비의 ‘말똥가리 시인’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웨덴 국민에게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세상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자연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는 노벨 문학상 제정 이후 스웨덴 출신의 일곱 번째 작가가 됐다. 올해 80살인 트란스트뢰메르는 23살 때 ‘17편의 시’로 데뷔해 ‘여정의 비밀’ ‘미완의 천국’ 등을 내며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 위에 모더니즘의 세계를 펼쳤다. 지금까지 총 10편이 넘는 시집을 냈지만 전체 시는 2백 편에 불과해 ‘과작(寡作)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생존해 있는 시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으로, 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 문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로 지목되고 있다.
스톡홀름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교도소와 장애인 시설, 마약중독 차 치료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1990년 뇌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반신마비가 와 현재 사람들과 대화조차 어려운 상채다. 즐겨 치던 피아노도 이제는 왼손으로밖에 연주할 수 없다고 한다. 한 해 4-5편 정도의 시만을 발표하며 차분하고, 조용하고, 시류에 흔들림 없는 ‘침묵의 시’를 생산해 온 그의 시는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이고 심미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준 그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시의 영역을 확대해 현실정치나 사회와 벽을 쌓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자기만의 작품 세계를 꿋꿋이 지켜왔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을 탐구하고 있기에 그의 시 한 편 한 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광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독일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영어 등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도 다수 받았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은 <기억이 나를 본다>가 유일하다. <기억이 나를 본다>는 2004년 출간된 시선집으로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사과나무, 벚나무, 호수, 잔디밭, 햇볕, 얼음, 눈, 붉은 벽돌집 등 시에 등장하는 소재만으로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스웨덴의 차갑고 투명하며 깨끗한 자연 속에서 그는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 냈다. 고은 시인이 책임∙편집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시를 전세계에 알린 유력자, 고은
이름없는 공간에 삶의 의미를 둔 ‘민족 시인’
고은 시인은 9년 연속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올해도 고배를 마셨다. 꾸준히 후보로 올랐던 고은 시인은 노벨 문학상 베팅에서 배당률 14대 1로 6위에 오르며 강력한 후보로 점쳐졌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고은 시인은 만해문학상, 대산문학상, 스웨덴 시카다상 등을 수상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유력한 수상 후보자임에도 불구, 고은 시인이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던 이유를 놓고 한국 문학계는 한글 번역의 문제점을 그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수준 높은 번역과 역량 있는 번역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전한다. 2001년 설립된 한국문학번역원 등이 번역출판과 번역가 양성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에 소개된 한국문학은 1500여 종에 불과하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고은은 한때 불교 승려로 시작 활동을 하던 중 1958년 <현대문학>에서 ‘봄밥의 말씀’ ‘눈길’ ‘천은사운’ 등을 추천 받아 등단한 시인이다. 1960년에는 첫 시집 <피안감성>을 간행하였으며 1962년에는 승려에서 시인으로 환속해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기도 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이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표출하였다. 그 후 고은 시인은 영웅주의에 물들지 않고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에게 시를 왜 쓰냐고 물으니 “여기까지 오는 길 44년을 나는 어설픈 농부였고 새였고 울음의 무당인가 하였다. 그러는 동안 말이 종교였다”고 대답하였다. 스스로의 시를 어설픈 농부였노라, 새였노라, 울음의 무당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시는 산문이 가지지 못한 치열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 역사와 정서, 선, 사회 문제를 넘나드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고은 시인은 약 25년 동안 5,600여 명의 인물로 한국 역사를 더듬어 온 연작시 시리즈 <만인보>를 엮었다. 1968년부터 2010년까지 총 30여 권 3천 8백여 편의 시집으로 연작된 인물 대서사시인 <만인보>는 민족이 다양한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평가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작품으로 보는 세계 최고의 작가, 그 빛나는 영예
역대 노벨수상자와 수상작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 2010년

헤르타 뮐러 <숨그네> - 2009년

르 클레지오 <황금 물고기> - 2008년

도리스 레싱 <황금노트북> - 2007년

기억이 나를 본다
눈을 감는다.
소리 없는 세계가 있고
갈라진 틈이 있고
집들, 나무들, 울타리들이 / 어둠의 소리 없는 눈사태 속에 확대된다
색채들이 화르르 타오르고, 만물이 회전했다. 땅과 나는 서로 서로를 향하여 튀어 올랐다.
햇빛 속에 서서 눈을 감으면 서서히 앞으로 밀려가는 느낌을 가지리라
돌들은 바다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쳐 여기에 와 있다
형체 없는 기억들이 바다 바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낯선 조상으로 굳어진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사슬이 부서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고 다시 붙고 한다는 것만, 영원히
하지만 오늘 나의 응시가 나를 떠났다.
나의 눈멂이 사라졌다.
검은 박쥐가 내 얼굴을 떠나 여름의 밝은 공간을 가위질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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