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 김여사!
양성희
나는 운전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 운전면허가 없다. 대부분 깜짝 놀란다. 자가운전이 일반화 됐고, 그래도 "직업이 기자인데 어떻게" 라는 말이 따라 나온다. 나의 무면허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어려서부터 겁이 많아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남겼는데, 자동차도 그 중 하나였다.
어린 눈에 길거리를 달리는 차들은 그저 '흉기' 쯤으로 보였다. 차멀미가 심해서 차타는 게 고역인데다가 운전자 옆 앞자리엔 잘 앉지 못했다. 옆 차들이 돌진해와 부딪힐 것 같은 아찔한 공포감에 눈을 감곤 했다. 대학원 졸업무렵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그 트라우마도 컸다. 차를 타거나 운전하는 다른 가족의 안위까지 걱정할 정도가 됐다.
생활의 필요에 의해, 운전할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운전학원도 다녔고, 유효기간이 있는 필기시험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여러 번 붙었다. 운전 부적격자(?)만 모아 가르친다는 유명 강사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운전이 무섭고, 싫었다. 내가 운전을 안 하는 게 이 땅의 도로교통을 위해서 훨씬 좋다는, 나름대로의 변도 있었다.
물론 운전을 못해서 손해난 일은 한 둘이 아니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일등 엄마가 되는 길은 자동포기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아이를 실어 나르며 일 분 일 초 낭비 없이 시테크를 해줘야 하는 '메니저 엄마' 로서 실격이다. 대한민국에서 택시 승객으로 살아가기도 피곤하다. 제 돈 내고 타는 택시인데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 눈치 보일 때가 있다. 너무 가까운 거리라서, 혹은 너무 먼 거리라서, 혹은 길이 막혀서 등등이다. 반대로 기사님이 너무 격의 없이 친근해 피곤한 경우도 있다. 사생활을 따져 묻거나, 정치논쟁을 '강요' 하거나,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라디도 방송을 업청난 데시벨로 서비스해 주기도 한다.
아, 나는 차를 타면 그저 편안하게 가고 싶을 뿐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기사님이 훨씬 많다는 것을 인정!)
스트레스가 푹푹 쌓이는 어떤 날에는, 차만 있다면 어디론가 혼자 훌쩍 갔다 올 수 있을 텐데 그마저 안 되는구나, 생각하다 외려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도 한다. 이런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요즘 내겐 절대로 운전하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 바로 그 '김여사'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뉴스에 동영상까지 주르르 뜨는 숱한 김여사들 말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운전을 못한다거나 사고를 더 많이 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김여사들은 운전미숙의 상징, 사고유발의 상징, 나아가 무개념, 민폐 캐릭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백번 양보해 여자가 남자보다 운동신경이 둔하다고 쳐도 운동신경과 교통사고의 관계는 입증된 바 없다).
이 '김여사'는 지하철이나 버스에 빈 자리가 생기면 염치불구 펑퍼짐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서민 '아줌마'의 '사모님' 버전이다. 남편 잘 만나 사모님 소리 들으며,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차 끌고 나와 길만 막히게 한다는 식의, 중년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적대감을 담은 대표적 조어이기도하다. 하여간 난 차를 몰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결론을 다시 한 번 내린다. 내가 만약 운전을 서툴게 한다면, 그건 내가 여자여서가 아니라 위에 쓴것처럼 이러저러한 배경이 있는 것일 텐데도, 그들 눈에는 그저 또 하나의 김여사일 뿐이니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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