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문(弘道門)앞에서 가을 하늘을 만나다/ 원철스님
구월 국화는 구월에 핀다고 했다. 꽃은 제철이 올 때까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성급한 마음으로 구
월을 맞았다.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 체질임에도 팔월이 너무 더웠던 까닭이다. 그래서 꽃이 아니고 사람인가
보다. 반소매 차림으로 해인성지를 찾던 이들도 이제 대부분 긴소매로 바뀌었다. 법명으로만 불렀던 지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경주 최씨라고 소개한다. 이어 시조(始祖)인 최최원 할아버지의 사당 안내를 부탁했
다. 함께 가야산 어귀에 자리 잡은 유적지를 찾았다. 적당한 크기 의 막돌로 자연스럽게 잇댄, 폭이 좁다는 느
낌이 드는 긴 계단은 가팔랐다. 끝나는 자리의 삼문(三門)은 여느 때처럼 굳게 자물쇠로 채워져있다. 현판인
홍도문(弘道門)만 없는 인기척을 대신할 뿐이다. 벽처럼 막아선 그 문 앞에서 고개를 돌려 건너편을 바라보니
어느새 하늘은 가을 색이다. 물 빛, 산 빛도 마찬가지다.
'홍도(弘道. 도를 넓히다)' 라는 두 글자는 오랜 세월 동안 머리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화두였다. 20여년 전,
팔공산 은해사에 머물 때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송나라 시대를 풍미했던 기라성 같은 선사(禪師)일백여
명의 전기(傳記)를 정리한 상.하 두 권의 만만찮은 부피를 자랑하는 한글 번역본이다. 밥값을 제대로 했노라
고 흐뭇해하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무언이든 '첫' 자가 붙으면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한 컷의 개인 역사인 까닭이다. 무명의 저자가 상업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전문서적
을 낸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언론사는 신간 안내 코너에 단신이지만 작게나마 언급해 주었고, 출판사는 역자
에 대한 예의(?)로 광고까지 실어주었다.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광고 머리글은 '사람이 도(道)를 넓혀 갑니다'였다. 번역자가 봐도 그 책의 성격을 단 한마디로 압축한 절창
(絶唱)인지라 울림이 적지 않았다. 출판의 기쁨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무렵, 광고 문안이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원문을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선사께서 이런 명언을 남겼는지 궁금증이 더한
까닭이다. 일천 페이지나 되는 첫 책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색인 작업하듯 뒤졌지만 결국 출처는 찾아낼 수
없었다. 컴퓨터 검색 기능 역시 별다른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카피라이터는 이 명언(名言)을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 창작이란 말인가? 할 수 없이 뒷날을 기약하며 원문 찾기를 접어야 했다. 이후 시
간이 흐르면서 그 궁금중도 점차 기억에서 희미해져 갔다.
깊은 산중임에도 한낮의 늦더위는 여전하다. 집배원 아저씨가 점심 무렵에 갖다주는 신문도 며칠째 구문으
로 밀려 있고 매주 오는 주간지도 이미 두서너 권째 쌓였다. 날씨를 탓하며 밀쳐놓은 까닭이다. 나른한 오후
양쪽 방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시원한 흙벽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서 눈을 반쯤 뜬 채 잡지부터 펼쳤다. 건성
으로 읽다가 갑자기 두 눈에 광채가 났다. '조선유학에 오늘을 묻다' 라는 연재 글 가운데 이율곡 선생을 논하
는 자리에서 "사람이 도를 넓힌다" 는 그 문제의 한마디를 다시 발견한 까닭이다. 세속적 표현을 빌리자면 그
간의 구독료를 한꺼번에 환급받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제대로 책값을 한 것이다. 고리타분(?)한 유학
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내는 소장학자 백만정 선생의 만만찮은 내공으로 인하여 그 코너를 열독해오던 터
였다. 난해한 문집과 경전 안에 숨어 있던 묵직한 문자를 조리질해 일반 대중을 위한 잡지 속으로 끌어내린
수고로움이 더욱 빛나 보인다.
전공이라는 이유로 당승(唐宋)시대 선사들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은 급기야 모든 그럴듯한 언어는 선어록
에 실려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그게 큰 병통이다. 찾다가 포기한 '사람이 도를 넓혀
갑니다'의 출전은 선어록이 아니라 '논어' 였다. 다시 말하면 공자님 말씀이다.
하긴 소화된 언어란 영역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설사 남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소화시켜 자기 언어로
만든다면 그건 자기 말이 된다. 그리고 무엇이건 비교를 통해 내 것을 제대로 알게 되는 법이다. 빌 게이츠도
"하늘 아래 새것은 정말 없다. 단지 새로운 조합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로서 힘을 더해 준다. 이제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잠겨 있던 홍도문을 힘껏 밀친다면 곧바로 열릴 것 같다.
긴 의심이 풀린 기쁨에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늘 펼쳐져 있는 습자지 위에 오랜만에 붓을 적셔 괴발개발 연
습 삼아 '홍도(弘道)'라는 글자의 앞뒤에 붙어있는 여덟 글자를 주문(呪文)처럼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내
렸다. 서툰 목수는 언제나 일한 티를 내기 마련이다. 그 와중에 튄 먹물 두 방울이 바짓자락에 훈장처럼 사이
좋게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인능홍도(人能弘道)요 비도홍인(非道弘人)이라, 사람이 길을 넓히는 것이지 길이 사람을 넓힐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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