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침자상 珊瑚枕子上의 이행루 二行淚여
반시사군 半是思君이요 반한 半恨이라
산호베개 위를 흐르는 두 줄기의 눈물이여!
한 줄기는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이요.
한 줄기는 그대를 원망하는 것이라
수절하는 과수댁의 마음을 읊은 것 같기도 하고, 실연
당한 남정네의 연시 같기도 하다. 사랑과 미움이란 동시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애愛와 증憎은 동전의 양면처
럼 둘이 아니라고 했다. 흔히들 가장 비참한 사람은 미움
받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경우라고 한다. 고전적인 미움
은 언젠간 돌아오리라는 희망의 여지를 담고 있는 미움이
지만, 반면에 잊혀짐이란 완전히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거기에서는 밉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래서 계산 빠른 이즈음 세대들은 미움을 당
하느니 차라리 잊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훨씬 선적禪的이다.
그런데 이 선시는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줄기
씩 나누어서 자기감정을 이입移入한 표현도 멋있거니와 동
시에 미움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간파
한 탁월한 중도中道법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연시의 대상
은 부처님이다. 작가는 송나라 때 만암치유萬庵致柔선사이
다. 부처님오신날 거룩한 말씀을 마치고서 마지막 마무리
로 내린 게송偈頌이다. 이는 부처님에 대한 당신의 솔직한
애증의 마음을 동시에 드러낸 그래서 어찌 보면 참으로
제대로 된 찬탄이라고 하겠다. 일방적인 칭송은 찬탄이
아니라 아부에 가깝게 되어버리는 것이 세상 언어이기 때
문이다.
깨친 성인을 님으로 여기며 혼자 사는 수행자들에게 불
조佛祖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잠시나마 원
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수도 생활이 만족스러울 때야
'부처님 따따봉'이지만 365일 늘 그럴 수만은 없기 때문
이다. 그냥 애초에 제 생긴 대로 살도록 내러벼둘 일이지
괜히 세상에 출현하시어 '너도 부처인데 왜 중생놀음을
하고 있느냐' 라는 그 한마디에 속아 '나도 부처 도리라'
다짐하며 부지기수의 인물들이 집을 나왔다.
재가자의 신분으로 머리카락을 가진 채 도인의 위치까
지 올랐고 나중에는 모든 가족까지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
한 방온(龐蘊?-808)거사도 처음에는 관리를 뽑는 과거시험
장으로 가다가 마조선사의 선불장(選佛場 부처뽑는집)으로 발
길을 돌린 일은 유명하다.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뒷날 단
하천연(丹霞天然 739-824)선사라고 불리는 수재 거사는 그 길
로 출가를 해버렸다. 장안長安으로 가던 도중 주막에서 만
난 한 선승으로부터 관리가 되기 위한 과거보다는 부처가
되기 위한 과거가 더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원
인이었다. 그 한마디가 괜히 잔잔한 호수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격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서 후일까지 입을 닫고 있을 선사들이
아니다. 엄숙한 부처님오신날 모두가 연등을 올리면서 진
리의 길을 밝혀주신 그 공덕을 찬탄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송대 절조絶照 감鑑선사는 '갓 태어난 부처님으로
인하여 천지에 가득 번뇌를 일으키게 되었다'며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소리를 하고 있다.
어쨌거나 표현법에 감각의 차이는 있지만 수행 길이 만
만찮은 일이 아님을 반어법으로 말한 것이라 하겠다. 백
번 양보해서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미 닦여져 있는
그 길마저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오히려 원
망스럽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역으로 당신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각각 성분이 다른 두 줄기의 눈물로써
초파일에 참회와 동시에 우러러 추앙했던 것이다.
글 / 원철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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