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암자에는 탱자나무가 길게 빙 둘러져 있다. 이런 생나
무로 만들어진 울타리는 이제 일부러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 되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산중
은 겨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라 잎 없이 뽀족뽀족
한 가시들이 더욱 도드라져 담장이라는 본래 기능에 더없
이 충실하다. 길바닥에는 지난해 떨어진 탱자 열매들이
매마른 채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예전에는 한약재라고
하면서 일부러 익기를 기다렸다가 더러 따가고 하더니 이
즈음은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물론
떨어진 이후도 마찬가지이다. 열매가 제값을 못해도 강남갔
던 제비가 돌아오은 춘삼월이 왔음을 아는지 여기저기 가
지 끝에도 파아랗게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서귀포에 위치한 그 절은 정원수가 모두 귤나무였다.
구멍이 숭숭뚫린 나지막한 현무암 돌담으로 경계를 친 요
사채의 큰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멀리 바다가 한눈에 들
어온다. 눈을 돌려 이른 봄임에도 황금빛의 큼지막한 귤
이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하여 한참 쳐다보았다.
그곳에 머물고 있는 도반과 함께 오랜만에 차상을 마주하
니 십만 팔천 리 떨어진 강남으로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이는 묻지도 않았는데 '하귤夏橘' 이라고 대답
했다. 육지에서 온 사람마다 모두 의아해하며 물어보는
모양이다. 겨우내내 꽃처럼 나무에 매달려 동절기를 견디
는 만생종이라고 부연 설명까지 해주었다.
며칠 전 두루마리 상태로 남아 있는 고려에서 처음 만
든 경전들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 남선사南禪寺로 향하는
연구원들을 배웅했다. 그들은 일보다도 '호시절이라 교토
곳곳에 만개한 매화꽃을 볼 수 있겠다' 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했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이즈음의 강남 풍경을 '항
상 강남의 삼월 풍경을 생각하니 새가 우는 곳에 온갖 꽃
이 향기로우리라' 고 했던가. 봄을 애써 기다리지 않아도
제주도건 일본이건 중국이건 남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언
제든지 봄을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귤나무를 생각하니 '남귤북지南橘北枳' 라는 말이 떠
오른다. 물론 원어의 남북은 중국의 양자강을 중심으로
지역을 나눈 것이다. '강남의 귤 강북의 탱자' 라고 했으
니 같은 나무를 심어도 강 남쪽에는 귤이 열리는데, 강북
에 심으면 탱자가 되므로 그 맛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강남과 강북의 지리적 자연적 환경이 서로 다른 까닭이
다. 하지만 귤과 탱자는 같은 운향과雲香科에 속한다. 그처
럼 양자강은 남북을 갈라놓기도 하지만 또 강을 중심으로
서로를 함께 마주보도록 해주어 다시금 하나임을 일깨워
준다.
강 남북의 기준을 양자강이 아니라 한강으로 바꾸어 놓
으면 또다른 언어가 된다. 강남의 뚝섬 봉은사는 강북의
잘나가던(?) 상궁들이 나룻배를 타고서 갈대밭을 헤치며
기도하러 오가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화려한 고층빌
딩의 숲 속에 둘러싸인 채 도심 속의 섬이 되어 버렸다. 이
는 몇 십 년 만에 강남과 강북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 까
닭이다.
이제 지하철 종각역 벽에는 '강남 같은 강북' 혹은 '강
북에서도 이제 강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라는 광고가 심
심찮게 나붙는다. 하지만 이것이 지역적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은 언제든지 위치가 달라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변한 '말씀' 으로 읽혀지는 한가
한 토요일 아침, 송나라 야보도천 선사의 시를 가만히 읊
조려 본다.
강북에는 탱자되고 강남에선 귤이지만
봄이 오면 모두 함께 같은 꽃을 피우는구나
강북성지강남귤 江北成枳江南橘
춘래도방일반화 春來都放一般花
ㅡ 원철 스님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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