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속으로/ 김진태
절[寺]을 달리 일컬어 '연꽃 세상[蓮刹]'이라고도 한다. 연꽃은 맑고 깨끗한 삶을 상징하는 말로 불교의 꽃이기도 하다. 연꽃은 맑은 이슬이든 더러운 흙탕물이든 몸에 붙이지 않는다. 절을 '연꽃 세상'이라고 일컬음은 절의 생리가 마치 저 연꽃과 같음을 뜻함이리라.
마을 사람들은 막연히 절에 사는 스님들의 생활이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들 하는데, 막상 그 까닭을 물어 보면 "혼자 사시니까요" 한다. 그러나 이 말은 꼭 들어맞는 대답은 아니다. 혼자 살기란 사람에 따라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그렇지만, 해마다 많은 젊은이들이 절을 찾아가는데, 간 만큼 많은 스님들이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말 그대로 절 생활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연꽃 세상' 의 뜻을 비추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자신을 연꽃과 한몸을 이루게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행자가 탐욕과 번뇌에 끄달리면 당연히 '연꽃 세상'에 붙어 있을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맑고 깨끗함만을 고집해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모두 허망한 것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수행자만이 '연꽃 세상'에 길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절은 절[拜]을 많이 하는 곳이라서 절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절을 '상가라마(Sangharama)'라고 하는데, 우리는 승가람(僧伽藍)' 또는 그냥 '가람(伽藍)'이라고 부른다. '상가' 는 '우리, 여러 사람' 이라는 뜻이고 '아라마'는 '행복이 있는 곳', '숲' 이란 뜻이므로, 이것을 한뜻으로 이어 보면 '뭇 삶들의 행복이 있는 곳' 이 된다. 그러므로 절이 갖고 있는 본디 뜻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신 앞에 무릎 끓고 기원하거나 용서를 비는 별난 장소' 와는 거리가 멀다. 경전에 이런 말씀이 있다.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을 교화하신 뒤, '바라나시'라는 아름다운 도시 변두리에 머물러 계실 때였다. 그 때 바라나시에서 첫손 꼽는 장자의 아들 야사는 밤마다 벗들을 불러들여 아름다운 여자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며 젊음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춤추다 쓰러져 자던 야사는 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걸으며 자신을 향해 물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학문, 벗, 여자, 보석, 노래, 춤, 그 어떤 것도 그의 공허감을 메워 주지 못했다. 새벽녘, 바라나시 교외의 숲길을 걷던 야사는 가슴을 치며 외쳐댔다. "괴롭다. 아 괴롭다." 그 때였다. 망고 나무 숲 속 어디에선가 맑고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너라, 야사여, 이 곳에는 괴로움이 없느니."
부처님께서 야사를 부르시며 "이 곳에는 괴로움이 없다"고 말씀하신 '이 곳'은 어딜까? 그 곳은 분명 이천오백 년 전의 어떤 새벽 시간에 바라나시에 가야 볼 수 있는 그런 망고나무 숲은 아니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저 '이 곳'이야말로 진정한 뜻에서 말한 '연꽃 세계' 며, 또 들판을 찾아 들어간 수월의 '가람'이 아니었을까?
천장암은 충남 서산군 고북면 장요리 연암산 중턱에 있는 작은 절이다. 연암산은 높지도 낮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밀치고 돌아앉은 옹골찬 모습이 찾는 이들로 하여금 깊고 맑은 기운을 절로 느끼게 한다. 산길로 이 킬로미터 남짓 걸어 올라가면 산비탈에 제비집처럼 앉아 있는 암자 하나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절이 바로 근세에 이르러 이 땅의 선(禪)의 거장이던 경허가 일 년 석 달 동안 보림(保任) 수행을 한 곳으로 이름난 천장암이다.
천장(天藏)이란 '하늘 속에 감춘다' 는 뜻일 터이니, 장자(莊子)가 물가에 매어 둔 배를 온전히 숨기려면 산이나 들이 아닌 배 속에 숨겨야 한다고 했던 말과 통하는 말이라 하겠다. 하늘[天]이란 존재의 본디 모습을 뜻하는 낱말이니 말이다. 그래서 경허가 이 절을 두고 "부처도 조사도 찾아 오지 못할 곳" 이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
천장암은 깊고 연암산은 힘차다. 소나무 숲이 짙푸른 연암산이 천장암을 끼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 보면, 오뉴월 물찬 제비가 숨겨진 꽃잎을 입에 물고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듯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계룡산 동학사에 불꽃 같은 용맹 정진으로 깨달음을 얻은 경허가 보림 수행을 하려고 천장암에 온 것은 수월보다 세 해 빠른 1880년의 일이었다.
그 무렵 천장암에는 경허의 친형인 태허(太虛)가 홀어머니 박씨를 모시고 이 절 주지를 지내고 있었다. 경허가 왜 세속의 인연을 찾아 이 절에 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아마도 더욱 철저한 보림 수행을 하려면 세속 인연을 끊을 수 있는 환경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성껏 뒷바라지해 줄 보살의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수월이 처음 출가하려다 끝내 가죽신 때문에 다시 주저앉게된 1881년에 경허는 일 년 석 달 동안의 불길 같은 보림 정진을 끝내고 다음과 같이 깨달음을 노래했다.
코구멍 없는 소 이야기
홀연히 듣던 그 날,
내 집임을 알았네.
때는 유월
연암산 아랫길
좋구나, 태평가여
일도 없는
들사람아.
경허의 이 오도송(悟道頌)은 정든 들판을 떠나 연암산 아랫길을 오르던 수월이 견딜 수 없이 끓어오르는 신심으로 수없이 읊조린 환희의 노래였을는지도 모른다. 수월이 연암산으로 들어간 때는, 경허가 호서 땅에 있는 여러 절들을 떠돌며 크게 선풍을 떨치고 있을 무렵이다. 수월은 경허의 세속 형인, 태허성원(太虛性圓)을 만났고, 부처도 조사도 찾아올 수 없다는 천장(天藏) 속에 몸과 마음을 모두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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