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서문
김일엽 스님의 생애와 사상
평소에 김일엽 스님을 깊이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일엽 선문(一
葉 禪文)>의 편집과 출간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은 과분한 영광이라
생각하기에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 느끼게 된다. 세상 살아가는 말귀
하나 변변히 헤아리지 못하면서 선사(禪師) 스님의 깊은 뜻을 세상에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주제넘은 짓일 수밖에 없으나 지난번에 <문화
사랑>에서 펴낸 스님의 시집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 되었삽기에>의
출간 때와 마찬가지로 스님의 법을 더 널리 펴보라는 제불보살(諸佛菩
薩)의 분부와 다생(多生)에 걸친 불연(佛緣)의 인과라 생각하여 모자
라는 능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뿐이다.
투철한 자기 정신
세속적인 눈에는 일엽 스님의 모습이 대개 4가지로 비쳐질 것이다.
근대문학 태동기의 문학도(文學徒)의 모습, 개화기의 여성운동가, 사
상가, 그리고 종교인의 모습이 그것이다. 마치 선재동자(善財童子)의
구도기(求道記)처럼 일생을 통해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모습들
은 결국 완성된 종교인의 모습으로 스님의 생이 마감되면서 극적이고
비장감(悲壯感) 마저 드는 인간사(人間史)를 구성하고 있다.
실패와 좌절, 구도와 완성 등 다분히 인간적일 수도 있는 곡절들에
도 불구하고 스님의 생애가 이렇듯 예사롭지 않게 우리에게 비추어지
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스님의 전 생애를 통하여 일관되게
관통되어 흐르는 '정신의 투철함' 이라 할 것이다.
스님은 어느 곳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항상 투철한 '자기정신' 으
로 '자기의 소리'를 내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을 영위했던 분이
다. 그러한 치열함으로 이 세상의 벽을 부수고자 노력하였으나 인간
적인 한계와 현실의 제약으로 고뇌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고뇌의 끝에
서 만공선사(滿空禪師)라는 대 선각(大先覺)을 만나게 되었다. 만공
선사로부터 영원을 사는 큰 가르침을 얻게 되어 불도(佛道)에 입문(入
門)하였고 일단 수도를 시작하자 그 투철함을 내부로 돌려 모든 것을
접고 철저히 '자기 완성'의 길을 추구했던 모습은 차라리 숭고하게도
여겨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김일엽 스님의 생애를 역설적이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김일엽 스님의 어느 한 단면만을 보면 시대나 관점에 따라
상당히 엇갈린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오늘 스님의 문집을 다
시 펴냄에 있어 김일엽 스님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고
기존 신도나 독자들의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다시 한 번 반추(反芻)해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졸문(拙文)이나
마필자가 지난 번 시집에 실었던 서문을 중심으로 김일엽 스님의 세
계를 살펴볼까 한다.
역설적인 삶
흔히 역설적이라고 까지도 표현되는 김일엽 스님의 삶은 1928년의
입산(入山)이 가장 큰 분수령이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신학문을 수료하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
리 여성이며, 더욱이 개화기 최초의 여류 문인으로서 신여성 운동을
주도하여 모든 주목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 홀연히 세파를 떨쳐 버린
이 사건은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두 번의 결혼과 실패, 자
유연애론과 신정조론으로 대표되는 여성해방운동, 삶과 죽음까지 맡
겨 버릴 불같은 사랑 등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삶을 이끌어 오던 그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잘라 버리자 세간의 의견은 분분할 수밖에 없었
다.
스님의 글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960년 초,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라며 불립문자(不立文子)를 내세우는 스승 만공 선사의 뜻에 따
라 절필한 지 30년도 더 지난 뒤였다. 대중포교에 뜻을 두고 펴낸<
어느 수도인의 회상>, <청춘을 불사르고> 등은 나오자 말자 당장 세
인의 관심을 끌며 서점가를 뒤흔들었다. 김일엽 개인과 비구니 세계
의 내면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던 이 책들에 대한 관심은 스님
의 깊은 성찰과 사색의 세계에 매료되어 폭발적으로 팔려 나갔다. 비
구니의 연애담쯤으로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내용에 감화되어 입산을
하거나 불교에 귀의하는 등 사회적 영향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문학 세계
그래서인지 김일엽 스님이 신변잡기적인 수상이나 산문, 심지어는
연애담 류(類)의 집문이나 남긴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
는 신체시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도 1년 빠른 1907년에 이미 <동생의 죽음>이라는 시를 쓴 바 있어서
사실상 우리나라 신시(新時)의 지평을 연 사람 중의 하나이다.
춘원 이광수가 감탄하여 '한국의 일엽이 되라' 며 호까지 지어 줄
정도로 빼어난 문재(文才)도 가지고 있던 그는 후에 <폐허동인>, <신
여자> 등을 통해 활발히 작품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발표된 많
은 시들은 그가 문학시에 시인으로 남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그
럼에도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에 비해 평가가 소홀한 이유는 한창 원
숙기에 작품활동을 그만 두어서 인상적인 대표작을 남기지 못했고 입
산 후의 공백이 길어 일반인에게 많이 잊혀진 까닭이다.
하지만 입산 후의 그의 작품들 또한 우리 불교사와 문학사에 있어
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문(漢文)의 형태로 내려오던 선문학(禪
文學)이 한용운에 이르러 비로소 근대화의 옷을 입었고 그 명맥을 김
일엽 스님이 잇고 있다는 점이다. 법어(法語)들이 많은 부분 수필 형
태로 표현되었고 수행과정의 오묘한 경지들이 근대적 문학 형태를 빌
린 선시(禪時)나 오도송(悟道頌)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문
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스님의 시 가운데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비견되는 작품들이 있는 것이 우연한 일만은 아닐 것
이다.
사상가의 면모
사실 김일엽 스님은 종교인 이전에 철학가이자 사상가적인 면모가
많은 분이다.
"사랑이란 우주 전체의 힘이며 생령(生靈) 본체의 생사가 달린 인
간의 가장 큰 문제이다. 나는 사랑과 근본을 알아 사랑할 줄 아는 사
람이 되려고 중(僧)이 되었다." 라는 외침처럼 스님의 삶 전체에 일관
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특유의 결단력으로 시대의 벽을 깨고 나가는
선각자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주체적으로 지배하려는 적
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러한 치열한 인간 정신과 자존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인간 완성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동인(動因)이었을 것이
다. 중요한 인생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불법(佛法)에 있음을 알고 그
는 주저 없이 입산(入山)을 결행했다.
"세상을 버리고 산에 들어와서 처음 한 공부는 '살고 보자'는 것이
다. 자기 본래의 만능적인 행동력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이
다." 라는 나중의 술회에서 보듯이 스님의 입산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인생을 걸고 찾아 나서야 할 삶의 절실한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입산 후 이상적이며 지고 지순한 가치만을 추구했다면 그의
삶도 다른 종교인들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현실 문제에 바탕을
둔 인간성 회복을 수행의 일차적 과제로 삼았고 나아가 인류애를 바
탕으로 한 인간 구제에 뜻을 두었다.
"나를 여윌 수 없는 나는 나를 만날 수 없으나 나와 연결된 남이니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며 항상 자비와 연민에 가득 찬 심경으로 세상
을 대했다. 이렇게 뚜렷한 자기의 소리를 가진 까닭에 부처님의 말씀
을 전할 때에도 종교적인 집착에 머무르지 않고 깊은 영혼에서 우러
나오는 생명력으로 깨달음의 길을 알려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미래세를 향해
1971년 1월 28일 새벽, 스님은 자신이 건립한 비구니 선원에서
조용히 열반에 드셨다. 세수 76세, 법랍 43.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마지막 열반의 모습은 그토록 치열했던 자신
의 삶조차 한 잎새의 운명으로 거두어 가는 것 같았다. 그의 삶이 성
공적이었나 하는 일말의 세속적인 질문은 이제 부질없을 것이다.
"나는 이 몸이나 이 혼의 의존이 아닌 불출구(不出口)의 나다. 나와
함께 우주와 생령은 기멸(起滅)이 성속되어 미래세(未來世)가 다하지
않는다."며 스님은 이미 어떠한 평가도 의미가 없는 불멸(不滅)의 길
로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인생으로서의 역설의 폭만큼 그의 삶이 깊고도 높은 것
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오직 영원으로 이어지는 이 생(生)의 인연
속에서 일엽 스님은 근세 불교의 보기 드문 선승(禪僧)의 모습으로 우
리 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을 뿐이다.
선문(禪文)과 법어(法語)
이렇듯 이미 선(禪)의 세계로 떠난 스님의 생애를 몇 권의 문집에
담아 두고자 하는 것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생각일지도 모
른다. 선사(禪師)의 깊은 뜻을 한정된 글 속에 제대로 담아 옮기는 것
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뿐더러 그보다는 중생교화(衆生敎化)의 방편
으로 쓰다 남겨진 글과 말 몇 마디가 오히려 스님의 진면목을 오도(誤
導)하고 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님의 초간(初刊)문집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은 입산
전(入山前)을 포함한 스님의 생전 모든 유고(遺稿)와 소소한 기록들까
지 실려 있어서 문헌상(文獻上)으로는 매우 의의가 놓은 것이지만 세
월이 많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이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로서는
스님의 행적에 대한 오해의 소지와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깊
은 이해까지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스님의 입적(入寂) 30년을 맞아 발간하는 이번 문집에는 일
반인들을 보다 빨리 선사(禪師)로서의 스님의 세계로 인내하기 위하여
입산 전의 대부분 글들은 생략하고 주로 입산 후(入山後)에 남긴 법
(法)과 선(禪)에 관련된 글과 어록(語錄)들만 추려 수록하였다.
어떻든 30년 이상의 시간 차이를 극복하여 현재와 미래의 독자들에
게 가능한 용이하게 이 책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하여 부득이 원문(原
文)에 한 두 가지 수정을 가했음을 이 자리에서 알리고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우선 원문상에 쓰인 한문(漢文)들은 가능한 한글로 바꾸어 ( ) 안에
한문을 표시하였고, 두 번 째로 옛 문투나 현재 잘 쓰이지 않는 말,
구식 문법체계로 잘 전달되지 않는 글 등은 되도록 현대어나 현대 문
법에 근접하도록 수정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주제넘고 어리석어 큰 잘못을 저질러 놓았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을 것이나 단 한 분이라도 더 스님의 세계에 가깝게 다가서게 하려
는 충정이므로 모든 점에서 너그러운 용서를 바란다. 아울러 이 책에
관한 잘못이 있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문학사랑>과 필자 본인에게
있음을 밝혀둔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을 위해 노심초사(勞心焦思) 애써주신 수덕사
환희대(歡喜臺)의 정진, 월송 스님 이하 여러 스님들과 일엽 스님 문
하(門下)의 모든 문도(文徒)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책의 인연으
로 일엽 스님의 큰 법력(法力)이 온 세상에 널리 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불기 2544년 겨울에 문화사랑 대표 이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