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나의 노랫소리에, 시간의 숫자(數字)와 공간의 한(限) 자도 그만
녹아 버립니다.
나는 나의 노래의 절대 자유를 위하여 노래 가락에 고저(高
低)와 장단(長短)을 맞추는 아름다운 그 구속까지도 사양하였습
니다.
그저 내 멋대로 나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를 뿐입니다.
나의 노래는 설움을 풀고 기쁨을 돕는 서정시(敍情詩)가 아
닙니다. 더구나 나의 노래는 착한 것을 권하고, 악한 것을 말
리는 교훈의 글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늘 사람의 거룩한 말씀이나 지하(地下) 인간의
고통의 부르짖음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의 노래를 찬양하거나 나의 노래의 뜻을 안다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노래에 흠집을 낼뿐입니다. 그렇다
고 석불(釋佛)도 모르는 우주의 원칙을 들먹여 보라는 그런
망발의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유정무정(有情無情)이 함께 일용(日用)하고 있는 백천
삼매(白千三昧)의 묘구(妙句) 그대로 읊조릴 뿐입니다.
그래서 썩은 흙덩이나 마른 나무 등걸이라도 자연히 나의
노래에는 감응(感應)이 있습니다.
나의 노랫소리가 귀에 스치는 분은 유의(有意)해 보셔요. 나
의 노랫가락에 맞춰서 무뚝무뚝한 바위덩이가 빙그레 웃음을
머금습니다. 질펀한 대지(大地)의 어깨춤 추는 소리가 그윽이
들려옵니다.
천상(天上)에서는 주야로 그치지 않던 환락적(歡樂的) 음악
소리가 제 부끄러움에 자지러지고, 지하(地下)에서는 간단(間
斷)없이 죄수(罪囚)룰 때려부수던 그 채찍이 넋 잃은 사자들
손에서 저절로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부르는 장소가
시장입니다그려.
싸구려 벗, 싸구려 장사아치들이 대지(大地)를 흔들어 넘기
는 그 소리에 나의 노래는 저기압(低氣壓)에 눌린 연기처럼
사라지기만 합니다그려.
마치 밑 빠진 구멍에 물을 길어 붓는 것처럼 지닐 데도 없
는 노래이언만, 그래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부를 뿐입니다.
밑 빠진 구멍에라도 언제까지나 물을 길어 붓기를 그치지
만 않는다면 필경은 물이 대륙(大陸)에 스며 넘쳐서 밑 빠진
그 구멍에까지도 차고야 말 것이 아닙니까. 나도 나의 노래
를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불러서 나의 노래가 삼천대천세계(三
千大千世界)에 차고도 넘친다면, 나의 노래가 듣기 싫어서 귀
를 틀어막는 그 놈까지도 나의 노래화(化)하고야 말 것입니
다.
아아, 나는 미래세(未來世)가 다하고 남도록 그저 노래를 부
를 뿐입니다.
■ 一葉 스님이 入山 직후에 佛法을 宇宙化시키겠다는 <誓願文>으
로 지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