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처님 공부

가랑잎 새 진줏빛 사리 하나

해탈의향기 2012. 7. 31. 14:29

 

 

  김제군 화포리에는 성모암(聖母庵)이라는 절이 있다.  절에서

조금 위로 비껴올라간 곳에 잘 손질된 봉분이 하나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조선 중기의 명승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이다.  홀어머

니 슬하에서 자랐던 진묵대사가 모친의 사망 기별을 받고 손수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千年香火之地 의 터에 묘를 쓰니 비록 자

손을 보지는 못했을지언정 천년이 지나도록 향불을 피우면 제사

를 올리는 사람이 그치질 않을 것이라는 천하명당이다.

  실제로 진묵대사가 모친을 위해 손수 마련한 그 묘에 절을 하

면 소원을 성취한다 하여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향을

피우니 실로 고승의 혜안慧眼과 넓디넓은 대 보살행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에 대한 진묵대사의 극진한 효성은 속가와의 절연 絶緣

을 중시하는 불문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진묵대사는 유명한 고

승으로 만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것은 그가 인간애를 바타으로 한 초탈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

이다.  대사의 효성스런 행동을 대 보살행이라고 표현한 것도 바

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속세에 연연하지 않되 속세의 중생들을

사랑하는 자애의 마음.  그것을 어찌 미미한 계율의 이름으로 가

둘 수 있겠는가.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진묵

대사의 효심이 수백 년을 지나서 다시 어머니에 대한 극진한 마

음으로 피어났으니, 일당 스님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이 책이

야말로 그 꽃이라 할 것이다. 일당 스님의 사모곡思母曲 역시 진

묵대사가 어머니를 위해 묘를 쓰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일찍이

모친을 불가에 여의어 외롭게 자라온 그였지만 모자의 인연을

원망하기는커녕 더한 불심으로 사모의 정을 그렸으니, 팔십 평

생의 그리움이 녹아든 이 책은 필경 천년 사모思母의 향불을 사

를 향기로운 책임에 틀림없다.

 

  일당 스님의 어머니인 김일엽 金一葉은 여성운동의 선봉에 섰

던 신여성이었다.  아버지 오다 세이조는 일본의 명장이며 황궁

皇宮과 도쿄 축조의 주역인 오다 도켄도쿄중앙공원에 동상 건립

후손이었다. 세이조의 아버지 오다 호사쿠는 당시 은행총재이면

서 거부로 손꼽혔다.  즉, 정재계를 휘두르는 막강한 집안의 아

들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두 사람의 사랑이 평탄할 리 없었다.

  결국 어머니 김일엽은 신여성이니 여류시인이니 하는 속세에

서의 명예를 모두 버리고 돌연 부처님의 품에 귀의하여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수덕사 견성암見性庵에서의 밤낮을 가리지 않은

혹독한 수행 끝에 속세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

를 깨달고 열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대신 불행을 걸머지게 된 사람들을 간과해서

는 안 된다.  그들은 바로, 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던 한 남

자 오다 세이조와 불문에 어머니를 빼앗긴 일당 스님인 것이다.

  수도에 정진해아 하는 일엽 스님의 입장에서 보면 일당 스님은

애물碍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일엽 스님은 찾아온 아들을 어머

니라 부르지도 못하게 할 만큼 냉정하게 대했다.  그런 어머니를

못내 그리워하여 빈번하게 현해탄을 건너고 수십릿길을 발이 부

르트도록 걸어 찾아갔던 어린 일당 스님의 모습이 눈물겹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자신의 삶을 허비했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는 사모의 정을 늦추기는커녕 더욱 활활 불살랐다. 그

리고 그 그리움을 예술의 혼으로 끌어올려 위대한 작품을 탄생

시키는 원동력으로 삼았으니 일당 스님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화

가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단지 '사모곡' 만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그것

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스님의 일생을 어머니의 그림자가

지배했다고 생각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 책을 스님 개인의 인

생사라고만 치부해버리기엔 역사적 배경과 스케일이 너무도 방

대하다.  애초에 신여성이었던 어머니와 일본인이었던 아버지의

만남이 말해주듯이 그것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인식을 요구한

다.  그 만남 속에는 이미 역사적 비극이 잉태되어 있었으며 그

비극의 씨앗이 바로 일당 스님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민족

의 비극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투영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우리 민족의 수난사인 것이다.

  또한 스님은 일찍이 열네 살 적부터 만공, 탄옹, 동산 , 적음,

백용성, 한용운과 같은 한국 불교계의 큰스님들과 인연을 맺었

으니 이는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수행도정을 연상시킨다.그런 점

에서 본다면 이 책은 불자들에겐 긴 수도행로의 신앙적 고백서

라고도 여겨질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애틋하고 간절한 어머니에 대한 모정을 그린

사모곡인 동시에, 민족사의 비극적 단면과 역사를 조명한 서사

시, 수행과 노스님의 인생철학이 향기로운 신앙서인 것이다.

 

  어찌 됐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책에는 개인적 역사적 아픔

을 딛고 일본이라는 험난한 땅에서 훌륭하게 승리한 한 한국인

예술가의 위대한 혼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일당 스님은 더 이

상 일엽 스님의 애물일 수 없으며 사리처럼 보배로운 존재가 되

었다.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김태신金泰伸이라는 이름으로 줄곧 활

동해왔던 일당 스님. 그분의 뜨거운 삶과 소박한 인생철학의 진

미를 이 책에서 느껴보기 바란다.

 

                                                          ㅡ 편집자 주

       ㅡ일당스님《 어머니 당신립습니다 》중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