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서 북을 치니 북에서 춤을 추네
:사람은 남북이 있지만 인간 본성은 남북이 없다.
가을 해가 기울어가는 자유로 주변 풍광은 고즈넉했다. 누른 억새풀 사이로 서해바다가 잠시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임진강이 나타났고 곧 목적지인 도라산 역광장에 도착했다. 철조망과 ‘제3땅굴’이라는 표지판을 보는 순간 ‘2007 남북정상회담’에 함께한 종교계 어른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왔다는 사실까지 잠시 망각했다. 냉전시대를 거쳐온 우리 세대에겐 반공교육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남에서 본면 최북단이지만 북에서 본면 최남단인 지점이다. 그렇다면 남북이라는 말도 상대적인 것이다. 예전에는 대립의 종점이었지만 지금은 화해의 시발점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버스를 타고 함께 간 원불교 교역자들의 정복인 흰 저고리, 까만치마 역시 남북이 나누어지기 전에는 평범한 아낙네들의 일상복이었다. 승복 역시 조선시대에는 모든 이의 평상복이었다. 옷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시절이 바뀌니 옷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사바세계에 남북이 없을 수는 없다. 당나라 때 중국 선종계 역시 남북이 있었다. 양자강 북쪽 지방에서는 신수(神秀)선사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장강 이남에는 혜능(慧能)선사의 교화력이 빛났다. 그래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수남능(北秀南能)’이라고 칭했다.
수행 방법 역시 차이가 있다. 남쪽 사람은 지름길로 가는 것을 좋아했고 북쪽사람들은 계단을 밟듯 차근차근 올라가는걸 선호했다. 성질 급한 사람은 남쪽 길로 갔을 것이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이는 북쪽 길에 합류했을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은 개인의 자유의지였다.
하지만 두 방법론을 비교할 능력이 없거나 출신지와의 거리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들도 다수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딜 가건 모두가 수행의 최종 목적지에 이르고자 하는 바람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혜능선사는 더벅머리 행자 시절 ‘사람은 남북이 있지만 인간본성(佛性)은 남북이 없다’는 명언을 남겨 주변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스승까지도 소스라치게 놀라도록 만들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남북은 남북이 아니다. 남쪽 강변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북쪽 평야에선 비가 내리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서로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상태를 운문(雲門)선사는 ‘남산에서 북을 치면 북산에서 화답하여 춤을 춘다(南山打鼓 北山舞)’고 노래했다. 남북이 ‘따로따로’인 것도 좋지만 ‘따로 또 함께’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원철스님의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에서
'모두함께 꽃이되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탈리아에서 고려불화 발견 (0) | 2013.01.12 |
---|---|
[스크랩]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0) | 2013.01.08 |
[스크랩] 드디어 개원을... (0) | 2013.01.02 |
[스크랩] ◈ 부정과 긍정 / 원철스님 ◈ (0) | 2012.12.17 |
[스크랩] 깨 볶는 솜씨로 커피콩 볶기(중앙선데이) / 원철스님 (0) | 2012.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