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함께 꽃이되네

[스크랩] 길에서 나고 길에서 진 부처님의 삶을 좇다-새벽별 빛나던 보드가야

해탈의향기 2013. 1. 17. 05:16

12월 8일 샛별을 보는 순간 ‘고타마에서 붓다로’


오는 19일(음 12월 8일)은 불교의 4대 명절(부처님오신날․출가재일․성도재일․열반재일) 인 성도재일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한 후 6년 동안의 처절하고 긴 구도행 끝에 부처님이 된 날이다. 이를 기념해 이번 호에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를 먼저 싣는다. <편집자 주>



▶ 사진설명 : 마하보디 대탑과 그 주변 탑들
고타마 싯다르타는 6년 간 고행의 흔적조차 물에 씻어버린다. 나이란자나 강에서의 목욕은 예전의 잘못된 수행을 버리고 올바른 수행의 길을 찾아야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때 수자타가 유미죽을 공양한다. 고타마는 단식으로 피폐해진 육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기력을 회복한 고타마는 핍팔라나무(향후 부처님이 이 나무 아래서 성도했기 때문에 보리수 나무라 불림)의 넓은 그늘 아래 습하지 않은 평평한 바위를 수행처로 삼는다.

그동안 책으로만 접한 부처님의 성지는 보리수나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녔기에 성지에만 보리수나무가 자라는 특별한 나무인줄 알았다. 하지만 인도에서 바로 본 결과,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다. 보리수나무는 북인도를 비롯해 중인도 지방에 많이 번식하는 인도에선 흔하디 흔한 나무였다.

인도 가이드는 순례자들에게 “부처님은 수많은 나무 가운데 왜 핍팔라나무 아래서 깨쳤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유인 즉 핍필라가 산소를 많이 내뿜는 나무란다. 그럴듯한 논리다. 팝필라 나무에서 내 뿜는 산소가 부처님의 머리를 맑게 해 더욱 선정에 깊이 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을 법도 하다. 물론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고타마는 다시금 보리수 나무아래 목동이 베어다 준 풀을 그 아래에 정성껏 깔았다. 그 인연으로 그 풀은 길상초(吉祥草)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고타마가 고행동안 쫓아 다녔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고타마에게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행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가 분소의를 입지 않고 목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고행자에게 목욕은 곧 수행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둘째는 달콤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지 않았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타락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셋째가 수행자가 밑에 풀을 까는 등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처럼 철저하게 육체의 고행을 요구했다.

형식주의 고행에서 답답함


원인 발견하고 새로운 시도


보리수 아래서 선정 후 깨달음


▶ 사진설명 : 마하보디 대탑 안의 부처님상
어찌보면 이는 형식화된 틀에 매달려 현실과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끼워 맞추려는 형식주의를 타파하고자 했던 고타마의 의지였다. 고타마는 수행을 하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아쉬움과 답답함 속에 살아야 했던 원인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다섯 명은 고타마에게 배신감을 느껴, 우루벨라 숲을 뒤로 하고 바라나시로 떠나버린다.

고타마는 수행이 깊어질수록 내면의 갈등과 번뇌가 잦아들었을 것이다. 부처의 길을 방해하는 마군은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 요소였다. 대표적인 설화로 마왕이 미인의 딸들을 보내 시험에 들게 한다. 이는 인간의 성에 대한 욕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인간들도 삼천배를 하든, 참선을 하든 음욕심을 완전히 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고타마는 수행이 깊어질수록 쾌락이 잠재워졌다.

드디어 고타마에서 붓다로, ‘12월 8일 샛별을 보는 순간 전광석처럼 깨달음’을 이루었다.

『불본행집경』에서는 “일체 마군을 항복받고 탐진치의 가시를 빼내고 금강좌에 앉은 고타마는 세간의 다투는 마음을 멸하고 자비심을 냈고 일체의 업장을 끊고 어디에도 걸림없는 청정한 마음을 얻었다”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도의 8대 성지 가운데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은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이 아닌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보드가야’다. 물론 시각적으로 순례자들의 마음을 뺏는 거대한 ‘마하보디 대탑’과 미얀마, 티베트 등 전 세계적으로 밀려드는 순례자들이 밤을 새우면 기도하는 모습에 가히 환희심이 불타오르기까지 한다.

전정각산 히말라야 설산 아닌


아열대 기후의 바위산일 뿐


붓다는 설산서 수도하지 않았다


▶ 사진설명 : 수자타 마을에서 바라본 전정각산은 돌산이었다.
홍법정사 등 제주불자 30여 명도 전날 마하보디 대탑 주변을 3보 1배로 돌며 청정히 몸을 씻어내고,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기도로서 자신의 발원을 세우며 부처님처럼 샛별을 보았다.

이어 순례자들은 우유죽을 공양한 수자타의 마을을 향했다. 건기의 나이란자나 강을 건너며 고타마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오른 산이라 하여 불린 전정각산(前正覺山)이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 팔상도(八相圖) 중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의 설산이 바로 이 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정각산은 히말라야의 설산이 아니고 아열대 기후를 가진 바위산일 뿐이었다. 카필라 성을 나온 고타마가 히말라야에서 고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설산수도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싯다르타의 모진 고행을 강조하기 위해 후세 제자들이 설산수도란 말을 은유로 갖다 붙인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인도에서 본 결과 붓다는 설산에서 수도하지 않았다.



2013-01-16
제주불교 /인도 보드가야서 이병철 기자

출처 : 원철스님과 문수법회
글쓴이 : 들꽃* 묘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