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하게 열심히 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
외교관이 된 반기문은 꿈을 이뤘으니 조금은 게으름을 피울 만도 한데 외교관이 돼서 직급이 올라가도 그는 게으름을 피울 줄 몰랐다. 열심히 공부했던 것 이상으로 일을 했다. 가장 먼저 출근해 일을 시작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했다. 외교관이 되기까지 그래왔듯이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공부가 무척 재미있어 밤을 새우며 공부했던 것처럼 정말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일을 했다. 급기야는 정말 일을 하다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1980년 국제연합 담당 과장으로 일할 때였다. 비동맹권에 대한 교섭이 한창이었다. 비동맹권이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권 진영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국가들로 만들어진 세력권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을 당시 120여 개 회원국으로 늘어날 정도로 막대한 세력을 형성해 있어서 우리나라로서는 그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다. 반기문은 비동맹의 대표 국가인 인도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두통과 오한, 고열로 도무지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장티푸스에 걸린 것이었다. 직원 들은 빨리 병원에 가라고 성화였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과장님, 그러다가 큰일 납니다. 일보다 몸이 먼저죠. 어서 병원 가세요."
"괜찮아요. 출장 다녀온 건 정리하고 가야 하니까. 조금만 참아보죠."
일을 하면서 겨우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답하기도 힘들 정도로 아팠던 것이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합병증으로 더 고생하고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병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도 그는 끝내 일을 마치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미련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해외 출장을 다닐 때는 반드시 무박을 넣어 일정을 잡았다. 3박 5일, 6박 8일처럼 장거리 비행의 경우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 시간과 숙박비 등을 아끼려고 하루, 이틀은 무박으로 잡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비행기에서 잠을 충분하게 자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잠깐 눈을 붙이는 수준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전부고 나머지 시간은 일을 했다. 광고나 영화를 보면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노트북이나 서류를 보면서 일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그건 비현실적인 것이다. 시내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랴, 출국 수속하랴, 짐을 부치랴 등등을 하고 나면 2∼3시간이 훌쩍 흐르고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행기에 타선 기운이 빠져 잠을 청하거나 비행기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뿐이다.
하지만 외교관 반기문은 비행 시간을 활용해 출장을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거나 만나야 할 사람의 대화 내용을 확인하는 등 끊임없이 일정과 업무를 점검했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영화 속 인물처럼 신나게 일을 하는 것이다.
외교부 장관으로 2006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 유럽과 미국을 순방했을 때는 24박 26일이라는 출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대통령과의 스케줄을 마치고 바로 유엔 총회에 참석해 유엔 사무총장 선거운동을 해야 했던 때였다. 비행기를 수십 번 연달아 타야 하는 일정이었고 하루, 이틀은 아예 비행기에서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하면서 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아무리 수행원과 비서가 따라붙는다 해도 개인이 스스로 싸고 풀어야 할 짐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한번 이동할 때마다 시차가 바뀌니 몸이 견뎌내기 쉽지 않았다.
시차 적응 스트레스로 쥐를 가지고 실험한 결과가 있는데, 6시간의 시차를 지속적으로 겪게 하면서 8주 동안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쥐의 생존율이 3분의 1가량 떨어졌다고 한다. 시차 적응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강한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실험 결과였다. 그런데도 반기문 총장은 비행기에 타면 업무 시작이었다. 당연히 그와 함께 출장을 떠나는 직원들은 그가 일하는 데 보조를 맞추다 파김치가 되어버리곤 했다.
그렇다고 그가 아래 직원들을 일부러 피곤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외교통상부 차관(2000년) 시절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해 일한 것으로 유명한데, 주말에 자신이 출근한 것을 알면 아래 사람들도 덩달아 나올 것 같아 조용히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외교관 반기문은 비행 시간을 악착같이 활용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어릴 때부터 시간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아왔던 습관도 있었지만 일에 대한 열정,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한 2년 10개월 동안 방문한 국가가 모두 111개국이나 된다. 해외 출장 357일, 재직기간의 3분에 1을 해외에서 보낸 것이다. 외교장관 회담만 374회, 기자회견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건 대한민국 외교부장관으로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대한민국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ㅡ 신웅진 《바보처럼공부하고 천재처럼꿈꿔라》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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