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해 한 시간도 쓰지 못한 그의 시련
예고하고 찾아오는 시련은 없지만 그의 시련은 정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부터 찾아왔다. 2001년 2월 그가 외교부 차관을 맡고 있을 때였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 회담을 했다. 두 대통령의 회담이 있기 몇 달 전부터 외교부에서는 밤을 새워가며 회담을 준비했다. 그런데 실수가 발생했다. 한국과 러시아가 회담에서 결의한 내용을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했는데, 거기에 우리 정부가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Anti-Ballistic Missile) 조약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탄도탄 요격 미사일 조약은 미국과 러시아(소련)가 핵전쟁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1970년대에 맺은 조약이다. 이조약으로 미국과 러시아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미사일도 100개 이상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적군이 쏜 미사일을 공중에서 다른 미사일로 무력화시키는 요격 미사일 시스템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면 어느 한쪽이 보복 공격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선제공격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북한, 이라크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져 이 조약에서 탈퇴하고 전미 미사일 방어 체제(NMD,National Missile Defence)를 발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ABM 조약을 지지한다는 것이 미국의 NMD 체제와 반대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한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에 등을 돌렸다며 일제히 비난했다. 정부의 뜻은 그게 아니었지만 오해의 여지는 충분했다. 공동선언문 작성 당시의 국제 정치 상황을 고려해 좀 더 꼼꼼히 살펴봤어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랴부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강도 높은 사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책임을 묻는 인사 조치를 해야 했다. 한미 관계가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정부에서는 희생양으로 반기문을 선택하고 그를 퇴임시켰다. 상황을 책임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언제나 자신보다 일이 우선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지난 31년 동안 나를 위해 단 한 시간도 써본 적이 없는데···. 죽고 싶다."
불미스러운 퇴진이었기에 그는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ㅡ 신웅진《바보처럼공부하고 천재처럼꿈꿔라》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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