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엄마 / 정이랑
초, 중, 고등학교 12년 생활
반장은 한 번도 되지 못했다
올해 6학년 아들은 반장이 되었다
내 이름은 정은희, 평상시는 승현엄마
반장엄마는 오늘 하나 더 붙여진 수식어
공개 수업이 있는 날
잘 하지도 않은 화장을 하고
즐겨 신지 않는 구두를 꺼내 닦았다
옷장을 뒤져 머플러도 이것 저것
거울 속의 나는 누구인가
낯설어서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날들이 수두룩하다
아이가 뒤로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엄마가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신나서 손 들고 발표를 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날들
되돌릴 수 없지만 오늘, 나는 저 아이의 엄마다
ㅡ 계간 「스토리문학」2013여름호
눈만 뜨면 누구엄마, 누구네 며느리, 아무개의 아내로 그들을 섬기고 치다꺼리 하다보면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까지는아니더라도 가끔 입맛이 깔깔하고 설거지가 귀찮은 생각도 들 것이다. 자신을 하루쯤 방기하고 싶은 순간도 없지 않겠으나 이렇듯 대놓고 자랑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뾰족구두 높이 세우며 '나는 저 아이의 엄마다' 다시 으젖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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