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도 즐길 수 있어야 행복하다
며칠 전 급하게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휴대 전화를 두고 온 게
생각났다. 갑자기 머릿속이 준공황 상태에 빠졌다. 예전과 달리 외우는 전화번가
없어서 누군가에게 연락할 길조차 막연했다.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약속 시간이 촉박해서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버텨 보기로 했다. 혼자 동동거
려 봐야 별무소득이니까.
처음 한 두 시간은 불안했지만 점차 느긋해졌다. 나를 에워싸던 그물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가끔 스스로 이동하는 안테나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안제 어디
에 있든 전파의 촉수에 닿아 있는 것 같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끼어드는 불필요
한 전화며 문자 메시지 때문에 생각의 흐름이 끊어질 때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간섭
들이 잠시나마 사라졌다. 오롯이 내 생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몸이 혼자 있다고 고독한 건 아니다. 생각도 전적으로 자신의 결로 누릴 수 있을 때
진정 고독한 것이다. 휴대 전화의 부재는 내게 그 즐거움을 주었다. 우리는 고독을 두
려워한다. 하지만 고독을 누릴 수 있어야 내게 충실할 수 있다. 고독은 고립과 다르
다. 고독은 자율적 고립이지만, 고립은 타율적 고독이다. 그런데 자율적이고 주체적
인 고독마저 고립으로 착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 시간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하고 그것을 자기 투자에 활요하지도 못한다. 홀로 있으면 불안하고 누군가 전화
와 문자 메시지로 불러 주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낀다. 지하철을 타면 습관처럼 휴대
전화를 꺼내는 것도 혼자 있는 불안을 해소하고 싶은 까닭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만
이라도 혼자 생각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
이다.
무리 속에 있다고 고독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고독은 온전히 자신이 주체가 되
어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행복이다. 그걸 사용할 줄 모르거나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
서 고립감을 느끼니 두려워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휴대 전화가 없으니 약속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훨씬 커졌다. '늦으면 어떻게 연
락하지? 혹시 그쪽에서 내가 연락을 받지 않아 애타지 않을까?' 등등. 상대에게 그런
애틋함을 느낀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혼자가 되니 모처럼 누릴 수 있는 고마움이었
다. 가끔은 그렇게 혼자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간지 좋은생각
글 김경집 님/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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