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헌
마지막 가는 마당에 어떤 묘비명(墓碑銘)을 남길 것인가? 정치인 JP는 올해 90세를 맞았는데 자찬(自撰) 묘비명이 신문에 소개되었다. '年九十而知八十九非(연구십이지팔십구비).' "나이 90이 되어 생각해보니 지난 89세까지가 모두 헛된 인생이었구나"이다.
모든 인간은 생(生)의 마지막이 임박해서 자기의 지난 인생을 부질없었다고 여기는 것일까? 영국의 독설가 버나드 쇼도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을 남겼다. 옛 선현들은 '年月日時(연월일시) 旣有定(기유정)인데 浮生(부생)이 空自忙(공자망)이라'고 한탄하였다. 연월일시는 팔자를 가리킨다. "하늘의 섭리[八字]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뜬구름 같은 인생들이 그것도 모르고 공연히 스스로 바쁘다"는 말이다. 필자는 '空自忙'이라는 표현이 목에 걸린다.
그 대신 소동파가 남긴 만고의 명문 '적벽부(赤壁賦)'가 가슴을 친다. 인생무상을 느낄 때마다 우리 조상들이 술 한잔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던 산문시[賦·부]이다. 정권 실세에 찍혀 유배 중이었던 소동파가 적벽에서 달이 밝은 날에 지인들과 배를 띄우고 놀다가 인생의 유한함을 절감하는 내용이다.
적벽대전에서 인생을 걸고 한판 대결을 벌였던 영웅호걸들은 다 어디로 갔나! 적막한 강물에 달빛만 교교히 비치고 있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인생을 돌이켜보니 천지에 하루살이가 붙어 있는 것과 같고, 망망대해에 한알의 좁쌀처럼 보잘 것 없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이 흘러가지만 장강(長江)의 강물은 끝이 없이 흐르는구나! 변하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가 한순간도 변하지 않을 때가 없지만 불변(不變)의 관점에서 보면 천지자연과 인간이 씨가 마른 적이 있었던가? 저 강 위의 청풍(淸風)과 산 위의 명월(明月)은 귀와 눈을 갖다 대면 음악이 되고 그림이 되지 않는가! 누가 가져다가 즐겨도 말리는 사람 없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조물주가 만든 무진장의 보물이니 우리가 마음껏 누려보자꾸나. 그러니 오늘 만고의 시름을 잊고 술 한잔을 해보세!
아직 육십도 안 된 젊은 사람이 감히 구십의 JP 선생에게 위로의 '적벽부'를 드리고 싶다. '八十九是(팔십구시)!'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모두함께 꽃이되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왜 돌은 꼭 주지 스님 밥에서만 나올까요?" (0) | 2015.02.28 |
---|---|
[스크랩] 도림당 법전대종사 49재 회향, 사리친견 봉행 (0) | 2015.02.12 |
[스크랩] 소소한 즐거움 (0) | 2015.02.07 |
[스크랩] [백성호의 현문우답] 나는 미생일까 사자일까 (0) | 2015.02.06 |
[스크랩] 원철 스님 산문집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0) | 2014.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