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함께 꽃이되네

[스크랩] "왜 돌은 꼭 주지 스님 밥에서만 나올까요?"

해탈의향기 2015. 2. 28. 00:06

 

햇병아리 시절

"그때 김밥 참 많이 말았죠."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1970년대 행자(行者) 시절을 이렇게 추억하곤 한다. 당시 절에선 '수익 사업'으로 소풍 학생·참배객에게 김밥을 팔았고, 이건 행자들 몫이었다.

종교인들도 초년병, 햇병아리 시절을 잊지 못한다. 불교는 행자, 천주교 수도자들은 종신서원(終身誓願) 전까지의 수련 과정, 개신교 목회자는 신학대학원 입학 후 목사 안수 받기 전까지가 그렇다.

[종교, 아 그래?]
불교 행자의 고생담은 유명한 게 많다. '마당 쓸기 3년, 가마솥 걸기 3년…. 염불·참선은 가르쳐주지 않고 계속 '노동'만 시켜서 뛰쳐나가려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수행이었더라….' 이런 내용들이다. 실제로 1980년대까지도 행자에겐 밥 짓기가 큰 교육이었다. 수십 명 먹을 쌀을 조리질해 돌 가려내고, 물[水] 맞춰서 가마솥에 안친 후 장작으로 화력 조절까지 마쳐 밥을 해낸다는 것은 여간 일이 아니다. 요행히 밥을 잘 지어도 누룽지 배출량이 좀 늘었다 싶으면 "그 행자, 게으르구먼" 하는 지청구가 따른다. 한 50대 스님은 "아무리 열심히 조리질해도 돌은 꼭 주지 스님 밥에서 나오더라"고 했다. '머피의 법칙'이 따로 없다.

천주교 수도자들의 수련 생활도 만만치 않다. 입회(入會) 후에는 종신서원까지 '지원기(志願期)' '청원기(請願期)' '수련기' 그리고 '유기(有期)서원'까지 차례로 거쳐야 한다. 수도 생활에 대한 환상은 없는지, 수도회가 지향하는 바와 자신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등을 꼼꼼히 살핀 후 '유기서원' 기간까지 통과하면 비로소 종신서원을 하고 '한 식구'가 된다.

개신교 목회자도 '좁은 문'은 마찬가지. 대학 4학년을 마친 후 신학대학원(신대원) 목회학 석사 3년을 마치면 목회자 문턱에 들어선다. 신대원을 마치면 교단에 따라 전도사(傳道師), 강도사(講道師·예장 합동 등), '준목(準牧·기장)' 등의 단계를 거쳐 목사 안수를 받는다. 예장 합동의 경우는 '강도사 시험'이 발목을 잡곤 한다. 시험 과목이 설교, 성경 주해(註解), 교리, 역사, 행정 등에 두루 걸쳐 있다. 시험 과목에 '정치(政治)'도 있다. 물론 '교단 정치'는 아니고 교단의 헌법(憲法) 등을 숙지해 목회 현장에서 맞닥뜨릴 온갖 상황에 대한 '솔로몬의 지혜' 대처 능력을 보는 것이다. 강도사 시험은 재수(再修) 삼수(三修)도 숱하다고 한다. 풋풋하면서 뜨거운 첫 마음은 이런 담금질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 원철스님과 문수법회
글쓴이 : 묘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