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백 년 동안을
나약하고 게으르게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굳은 의지와 진지한 노력 속에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113. 이 모든 사물의
그 생성과 소멸을 알지 못한 채
백 년을 무의미하게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이 모든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알고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114. 니르바나, 저 불멸을 알지 못한 채
백 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니르바나, 저 불멸을 깨닫고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115. 저 영원의 길을 알지 못한 채
취하여 백 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만이라도 여기
불멸의 길을 알고 사는 것이
보다 낫지 않겠는가.*
* 문제는 얼마만큼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수명장수 부
귀다남(壽命長壽 富貴多男)'이란 중국식의 명언은
무지스러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