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화의 날 잔치에 문화 가족과 그리고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 앞에서 문화주의를 선언하고자 합니다.
첫째, 문화주의는 인간 지향의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
작됩니다. 농경사회의 사람들은 자연을 믿었고 산업사회의 사람
들은 기계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정보
사회 혹은 후기 산업사회의 사람들이 믿고 떠받들게 될 것은 바
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기계는 기능을 위해서 있지만 예술은 감
동을 위해서 있습니다. 자연은 신비를 낳고, 기계는 기능을 낳고,
인간의 마음은 감동을 낳습니다.
문화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추구하는 시입니다. 정치가 음악이
되고 상품이 그림이 되며 노동이 연극이 되는 시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문화주의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문화주의의
힘인 감동과 공감을 확산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미 움직이는 국립극장은 우리 국토의 최첨단에
있는 마라도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북단의 백령도에까지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는 다섯 기관이 함께 모여
정식으로 그 출정식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 문화주의는 방편이 아니라 목표입니다. 그것은 날개가
아니라 촉각이고 그냥 굴러가는 바퀴가 아니라 방향을 꺾는 핸
들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잠자는 집은 삶의 목표가 아
니라 삶의 수단입니다. 먹고 나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입고
나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잠자고 난 다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산업주의는 이런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물음표에 대해서 입을 여는 것, 행동을 결정하
는 것이 바로 우리가 따르는 문화주의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주의 시대의 응답을 위해서 11군데의 모든
문화 시설을 개방하여 백만인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문화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 재정을 뒷받침하는 기업
인들의 후원회가 지난 8월 구성되었으며 오늘 여기에서는 그 문
을 여는 공식 개교선언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 문화주의는 관리가 아니라 참여입니다. 외투를 벗기는
것은 북풍의 거센 힘이 아니라 태양의 따스한 빛입니다. 산업주
의 시대에는 힘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이 승리자가 됩니다. 양떼
몰이처럼 명령하고 줄을 세우고 인도해 가는 관리 능력이 존경을
받습니다. 모든 힘은 대결과 경쟁의 원리에서 나왔습니다.그러나
문화주의 시대에는 태양처럼 따스한 빛으로 남의 외투를 스스로
벗기게 하는 사람들이 축배의 잔을 들게 됩니다. 달과 별의 운
행을 멈추게 한 신라 월명 스님의 피리처럼 우주를 꿰뚫는 융합
과 공감의 힘으로 함께 살게 하는 그것이 우리가 배우려는 문화
주의입니다.
통일의 꿈도 이 힘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문화주의의 동질성을 위한 기획의 하나로 우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의 표준과 국악의 기준음을 정하여 오늘 이 자
리에서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기능에서 감동으로, 수단에서 목적으로, 관리에서 참여로, 그
리고 대결에서 화합으로 ㅡ 이것이 산업주의에서 문화주의로 향
하는 새로운 세기의 화살표입니다. 문화가 이제는 역사의 앞바
퀴가 됩니다. 문화가 정치 경제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가 문화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문화 없이는 정치
도 경제도 발전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는 까닭입니다. 80년
대까지 이 민족을 이끌어 온 논리가 기능과 물질을 우선으로 삼
은 산업주의였다면 90년대의 그것은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고 민
족의 새로운 공감대를 발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익 집단에서 공감의 합의 집단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바람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
개비가 돌아갈 때 우리는 바람의 힘과 몸짓과 그 색깔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람개비는 지금 여러분들의 옷깃에도 있고 이 식장
주변과 거리에도 있습니다. 시민들은 문화주의를 생활화함으로
써, 예술가들은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마음의 바람개비를 돌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뛰어 그 바람개비를 돌립시다.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을
따라 가지 말고 부는 쪽을 향해 거슬러 꼿꼿이 섭시다.
그러면 이제 진정한 우리들의 시대가 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그런 문화주의 시대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먼 지평에
서 바람개비를 돌리며 달려오는 어린아이처럼 저 미래의 초원에
서 달려오는 말처럼, 바람 소리처럼 그렇게 올 것입니다.
ㅡ 이어령《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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