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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겨울나무가 되는 것을 두려워 말라/ 반기문

해탈의향기 2013. 5. 10. 09:35

 

 

                                                                                  

                                                                                

 

                                              

 

 

 

                                          앙상한 겨울나무가 되는 것을 두려워 말라

 

 

     

      차관에서 물러나자 그야말로 백수가 되었다.  가깝게 지내는 고향 선배가 지하철 정기권을 사주었다.  이제 백수니까 지하철을 타고 다니라는 뜻이었다.  지하철 정기권에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 선배의 깊은 뜻이 고마웠지만 기분은 묘했다.  당장 의료보험증도 사라졌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아들의 부양가족으로 등록을 했다.

 

      인생이라는 게 살다보면 힘든 일, 어려운 일이 닥치게 마련이지만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자긍심을 갖고 걸어온 공직자의 길을 한 번의 실수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하다니 억울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만  매듭지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심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흐르자 그게 아닌 듯했다.  자신에게 큰 자산이 있음이 떠올랐다.  평생의 멘토 노신영을 찾았다. 

 

      "여보게, 인생이라는게 말이지.  힘겹게 올라가야 하는 언덕도 있고 또 내려가줘야 하는 굴곡이 있고 그럴 수밖에 없어.  그리고 큰 사람일수록 그런 게 있게 마련이야.  자넨 지금 많이 억울하겠지만 이건 자네 인생에서 끝이 아니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게나.  문제는 이렇게 내려와 있을 때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점이야.  높은 곳에 있을

 때, 잘 나갈 때는 모두들 잘사는 법을 알고 있지.  그러나 이렇게 내려와 있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사람의 크기를 결정하는 법이라네."

 

      반기문은 노신영의 말을 담담히 들었다.  노신영을 찾기 전에 그는 평생 바쳐왔던 외교가를 떠나 다른 일을  찾으려 했었다.  그런데 노신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 잘못으로 떠난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때가 오리라' 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한 생각은 이제 그만 버리기로 하고 외교안보연구원에 방 하나를 얻었다.  연구를 하며 때를 기다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로부터 딱 4개월 뒤 한승수 외무부 장관(30대, 2001년∼2002년)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승수가 미국 대사를 하던 시절 그가 공사로 일했던 인연이 있었다.  한승수 역시 일 잘하던 부하 반기문을 많이 아껴주었고 그가 불명예스럽게 공직을 떠난 일을 대단히 안타까워하던 중이었다.

 

      "내가 유엔 총회 의장으로 가야 하는데 자네가 의장비서실장을 좀 맡아주게.  아무래도 내가 외교부 장관직을 같이 수행하다 보면 유엔을 비울 일이 많은데 그 자리를 자네에게 맡겨 놓으면 내가 얼마나 안심이 되겠나?"

 

      자신을 잊지 않고 불러주니 감사하기는 했지만 단번에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은 보통 국장급이 가야 하는 자리라서 차관까지 지낸 그로서 직급을 한참 낮춰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승수도 미안해했다. 

 

      "오랫동안 차관을 지낸 사람한테 국장급 자리에 불러 들이려 한다고 언짢게 생각하지 말게나.  내가 그런 생각 안해본 건 아니나 지금 자네는 한국을 떠나서 일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사람들이 하는 이런저런 말에 신경 쓰지 말고 나를 믿고 한번 따라나서 보게나."

 

      반기문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한승수의 말대로 이런저런 사람들의 뒷말에 신경 쓰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가깝게 알고 지내는 지인 중에 작은 수목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나무를 아주 오래 심고 가꿔왔다.  어느 겨울날 그의 수목원을 찾았을 때 그가 내게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자, 저기 겨울나무를 보세요.  이파리가 하나도 없으니 앙상해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년 봄에 다시 와 보세요.  눈부신 이파리들을 엄청나게 달고 있을 것입니다.  이게 자연과 인생의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겨울나무처럼 앙상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앙상해 보이지 않고는 내년 봄 눈부신 이파리들이 달린 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무를 오래 가꾸면서 깨달은 이치입니다."

 

      반기문은 자신의 인생에 느닷없이 겨울처럼 시련이 다가왔을 때 자신이 앙상한 나무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다음 해 봄날 눈부신 이파리들을 달 수 있었다.  그때 다름 사람들 눈에 초라해 보이는 것이 두려워 한승수 장관을 따라 유엔으로 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겨울과 같은 위기와 시련이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련과 위기가 왔을 때 겨울나무처럼 앙상해 보이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다음 해 봄날 무성한 이파리가 달린 나무는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ㅡ 신웅진《바보처럼공부하고 천재처럼꿈꿔라》중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