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선문

「수덕사 여승(女僧)」 의 노래를 듣고/ 일엽스님

해탈의향기 2014. 1. 5. 12:17

 

                                                

                                                                  환희대 원통보전

            

 

 

 

  여승(女僧)이라는 것은 수도하는 여인이라는 말이다.  수도라는 것은 길을 닦는다는 뜻인데 길은 두 길이 있다. 

그 하나는 현실적인 세상살이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이 삶의 바탕이며 생명의 본원인 정신적인 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살이를 하려면 이 두 가지 길을 닦아 놓아야 완전한 인간으로 삶을 이룰 수 있다.

 

  모든 생명은 끝없는 순력자(巡歷者)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이 못되면 다함이 없는 삶의 영구적 편안을 얻을 길이 없다.  이 영구적인 편안을 얻을 목적으로 살기 위한 살거리를 먼저 장만하려고 입산 수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길들을 다 닦아 마친 인간을 성불(成佛)했다고 한다.

 

  인간이란 시간과 공간을 나(我)하나로 화(化)한 만능적인 완전한 존재를 말한다.  시공(時空)을 <나>하나로 화(化)하지 못한 그 한 조각의 나라는 것은 습관의 집적(集積)에서 생긴 혼(魂)으로 끝없는 불만을 가질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은 못하지만 자기의 무한량(無限量)한 만능적 자원의 반영으로 욕구 불만을 안 가질 수 없으므로 자신으로서는 이것을 해결할 수 없는 줄로만 알아 다른 절대자에게 의지하여 하느님이니, 부처님이니 하고 찾는 것이다.

 

  생명의 씨(모습 없는 원동력 )는 다 같기 때문에 누구나 다 절대자였으면서도 이제는 자격 상실자인 인간, 즉 우리가 되고 말았다.  생(生)은 포기할 도리가 없다(자살 자체도 생의 포기가 될 수 없다. 영원한 생의 유전일 뿐이다).  생(生)의 책임은 생자(生者) 자신이 지게 된다.  나를 구원하여 줄 절대자가 따로 있는 줄 생각하고 남을 따라 헤매고 방황하는 생활이 아니라, 내가 <본 나> (자격상실 이전)를 회복하여 내가 내 생활을 하게 되어야 자립적인 인간이 된다.

 

  자립적인 인간이 되려면 우선 정신적이 길을 닦아 놓아야 한다.  이 일을 이미 알고 정신적인 길(道)을 닦으려고 입산 수도하는 중이, 교실이나 강당보다는 엄숙해지는 법당(法堂)에서, 더구나 세속(世俗)에서 지내던 습기(習氣)의 집적인 그 생각을 다 소멸시키는 공부를 하는 중이, 세상에 남긴 애인을 못 잊고 생각하여 마음의 노래가 눈물로 스며 나온다면, 자신은 벌써 중으로서 타락했음을 직감하고 눈물 진 가사 장삼을 벗어 거룩한 승의(僧衣)를 욕됨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수덕사의 여승의 노래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눈물 흘릴 적에

아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이러한 가사와 같이 감상적이고 저속한 노래가 인기를 끌어 감명 깊게 듣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나를 회복하는 공부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대중이 많다는 증명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을사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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